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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도시인의 새내기 시골 생활 - 장성수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작년 겨울, 그 동안 살던 전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에 황토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탈도시화 바램을 앞장 서 실천한 선구자적 용기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부럽기까지 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엉겁결에 감행한 시골로의 이주가 어떤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행동이었는지를 잘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난생 처음으로 시작한 시골 살림이 상당히 두려웠다. 60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도시를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완전한 도시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과연 도시에서 시골로의 이주는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었다. 두려움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 해 여름에는 동네에 큰물이 났다. 장맛비가 줄곧 내리더니 큰 개울이 넘쳐 개울가 집을 덮쳤다. 산사태로 도로가 막히고, 전기와 식수가 끊겼다. 새로 편입한 자에게 가해지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엔 너무 충격적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폭력성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시련은 겨울에도 닥쳤다. 폭설로 출퇴근길이 자유롭지 못했고, 본의 아니게 도시의 여관 신세를 지기도 했다.

 

화장실 하수구로 느닷없이 기어 나오는 지네, 눅눅한 방바닥을 옴찔옴찔 기어 다니는 벌레,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왱왱거리는 말벌 떼에 가슴 졸여야만 하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편안한 도시의 아파트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원망을 저절로 우러나오게 했다.

 

그러나 자연은 시련만을 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도시생활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번민이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로 답답했던 가슴이, 찌들었던 눈과 귀가 확 트인다. 트인 가슴으로는 맑은 바람 한줄기 시원스레 지나가고, 밝아진 눈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침이면 앞마당 나뭇가지로 내려와 앉아 다투어 지저귀는 새떼들 소리에 귀도 덩달아 즐겁다. 뽑고 돌아서면 또 다시 돋아나는 잡초들 등살에 허리가 뻐근하고,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며 토마토, 가지, 오이에 서식하는 진딧물 잡기로 몸은 고단하지만, 심간은 편안하여 속리의 신선이 따로 없다.

 

개망초, 개양귀비, 질경이, 환삼덩굴, 소루쟁이, 쇠뜨기, 비단풀, 쇠비름, 비비추, 감국 등 그저 잡초로만 알고 있던 야생초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들이 피워내는 수줍은 꽃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가외의 소득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난하지 마시길 바란다.

 

여전히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어정대고 있는 처지이지만, 머지않아 도시의 찌든 때를 완전히 벗게 되는 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우리 동네 이장 노릇 한번 해 봤으면 하는 소원이 요즘 새로이 생겼다.

 

△전북대학교 교수회 부회장 역임

 

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 역임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회장 역임

 

현)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공동연구원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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