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표(완주산업단지사무소장)
행정구역 통합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본격적 지방자치시대 개막이라는 상징적 의미에서 중앙정부가 신중한 검토와 충분한 주민 의견수렴 절차없이 전국 41개 도농지역을 통합하였다.
그러나 획일적이고 성과주의적이며, 효율성을 기준으로 추진한 결과 여러 가지 역기능과 적지않은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다. 전주와 완주 역시 통합이라는 거센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으나, 많은 전주시민들은 낙후지역과 통합으로 초래될 불이익과 피해를 예상하여 거부하였고, 농촌지역이 대부분인 완주 역시 상대적 낙후와 침체를 우려하여 반대함에 따라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또다시 통합에 관한 얘기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자주 오르내린다. 그러나 논쟁의 발원지가 직접 당사자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통합의 주체는 양쪽 지역 사람들이 중심이 되면서 무엇보다도 완주군민의 이해와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한다. 또한 통합논의가 특정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지역갈등을 부추기거나 찬성과 반대 측이 갑과 을의 관계로 나누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통합을 정당화하는 계층은 마치 그들이 이 시대의 선각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방관자이며, 객석에서 말없이 무대를 올려다보는 사람처럼 매도되어서도 더더욱 곤란하다. 정말 통합이 특정상품을 거래하듯 몇 사람 의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당사자들끼리 충분한 대화와 여론수렴 절차도 없이 시대적 흐름이니까 대세를 거역할 수 없다는 접근방식은 너무 위험하고 떳떳하지 못하다. 현대사회가 여러 가지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상호이해와 존중, 그리고 말 없는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을 정당화 하는 쪽은 양 지역이 원래부터 하나의 뿌리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주가 광역도시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대의 명분상 완주군도 기꺼이 동참하라는 논리다. 그러면서 통합 후 완주지역에는 각종 혐오시설을 유치하지 않겠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양 지역은 원래 완산주라는 단일지역으로 출발한 것은 사실이나 조선 태종 1403년부터 1914년까지 511년 이라는 오랜 세월을 전주부와 고산현으로 각각 달리하여 살아왔고, 일제시대인 1935년 전주시와 완주군으로 다시 분리되면서 현재까지 75년 동안을 유지해오고 있다. 광역도시화 운운 역시 지방자치라는 근원적 취지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보듯 인구 1~ 2만명 단위 자치단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중복투자와 고비용 행정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한 규모 확장 위주의 통합이 지방자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 것 인지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하겠다. 혐오시설을 두지 않겠다하는 선언적 약속 역시 현실성이 결여되어있다.
통합은 정치적 실리와 명분보다 양 지역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위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에 젖어 있는 완주군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부터 출발해야한다. 농촌지역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도 검허하게 경청하는 배려가 있어야한다. 또한 통합논의에 앞서 수 십여년간 양자치단체가 이웃해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섭섭함과 이해관계도 풀어가는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통합은 완주군민과 전주시민이 수평적이고 대등한 위치에서 손을 맞잡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 되어야 하고, 전라북도 발전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통합문제는 일부 특정단체 등에서 일방적으로 추진 하다가 상호간 불신만 키워왔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접근방법은 통합으로 가는 길을 더욱 험난하게 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만 남길 뿐이다. 완주군과 전주시 그리고 전라북도 전체를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할 것 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자.
/홍길표(완주산업단지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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