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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아버지와 막걸리 - 심철재

심철재(국민건강보험공단 파주지사 차장)

 

막걸리, 하면 나에게는 한마디로 '아버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시절인 40대 초반 공무원 생활을 접으시고 의견이야기로 유명한 전북 '오수'라는 곳에서 양조장을 인수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셨던 분이다.

 

61세의 연세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셨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항상 내가 존경하는 분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부지런하고 매사에 철투철미한 분이셨다. 이른 새벽, 아마도 4시 30분경 기상하신 것 같다.

 

먼동이 트기 전 1시간여를 종업원들이 술통에다 술을 담아 육중한 자전거에 싣고 각 마을별로 출정(?)을 나가는 모습을 독려하셨다.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셨던 아버지이셨지만 뒤늦게 알게 된 병환(폐암)으로 평소 많이 아프셨던 어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흡연하고 계시는 부모님들이나 자녀들은 술보다 담배가 건강에 더 해악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만일 그 당시 내가 현 직장에 입사한 이후였다면 어떻게든 조기검진을 통해 조기치료를 하여 더 오래동안 사셨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막걸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양조장 종업원들은 나의 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연년생이었던 나의 작은 형과 나를 초청해서 유행하던 노래와 춤을 추면 용돈을 종종 주곤 했는데 한번은 막걸리에다가 설탕을 넣어 달짝 찌근하게 만들어 가지고 한 잔을 마시게 하더니 거푸 3-4잔을 들이키게 유도하였다.

 

잠시 후 흔들흔들하는 모습을 보이던 나와 형은 아버지께 쉽게 탄로가 났고 아저씨들은 '어린 아이 가지고 장난쳤다'며,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가끔은 동네 친구와 선후배들이 몰려와 양조장과 집을 무대로 병정놀이를 하곤 했는데 놀이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지 않고 꼬두밥을 나눠 먹곤 하였다.

 

아버지는 막걸리의 효능에 대해 전북일보에 기고하신 적도 있었다. "막걸리가 곡주이고 도수가 낮기에 간에 부담을 덜 주고 허기용으로 뿐만 아니라 각종 영영소가 풍부하여 우리 조상 때부터 즐겨먹던 막걸리를 먹자"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남녀노소가 즐겨 먹게 되었고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등의 막걸리의 재조명 시대가 열리고 있는 사실을 하늘나라에 계실 아버지께서 아신다면 무척이나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아버지는 양조장을 운영하시면서 지역사회을 내 집안 일 같이 여기고 임하셨고 보람으로 아셨다. 오수의견이야기의 고증과 홍보, 도로나 다리확장, 학교·지서·소방서 증축, 갱생보호, 민원처리 등의 일에 애를 많이 쓰셨다.

 

이러한 영향으로 나는 항상 나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주어진 위치에서 공익을 우선하고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신념은 나의 뇌리 속에 살아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군에 가있는 나의 두 아이도 그리 하였으면 한다.

 

막걸리는 당신에게 그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다면 나는 언제나 '아버지' 라고 대답할 것이다.

 

/심철재(국민건강보험공단 파주지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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