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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을 걸으며 - 채수훈

채수훈(익산시 주민생활지원과)

누가 그랬던가. "소득 1만불 시대에는 마라톤이 유행이고, 2?3만불 시대에는 걷기가 유행"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배여나면서 서서히 옛길을 따라서 걷는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빨리 빨리라는 성장의 시대에서 지나온 길도 뒤 돌아 보는 느림의 미학시대가 도래 하였다. 백제의 숨결이 스며있는 천년고도 익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이 곳에도 역사길 복원과 함께 탐방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익산 둘레길'은 올 가을 함라·웅포지역 산 일원에 총 13.8㎞에 걸쳐 길마다 다섯 가지 이야기주제(양반길, 명상길, 병풍길, 역사길, 건강길)로 조성되었다. 제1코스는 함라면소재지에서 입점리 고분전시관까지이며 제2코스는 함라면소재지에서 숭림사까지로 나뉘어져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능선 길 좌우로 넓은 익산평야와 호수같은 금강이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백미이다. 서남쪽 저 멀리로는 서해바다가 아스라이 보이고, 동쪽에 위치한 미륵사지에서 시작된 백제로가 북서지역의 금강을 가로질러 웅포대교를 통해 부여와 연결되는 동선이 백제의 신 실크로드처럼 펼쳐져 있다.

 

둘레길 주변에는 역사, 자연 그리고 옛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역사·문화적으로는 함라의 함열향교, 3부자집 고택과 옛 담장 길, 허균의 홍길동전 집필지, 봉화산의 봉수대와 웅포의 천년고찰 숭림사, 백제의 유적 입점리 고분군, 고려시대 최무선 장군의 진포대첩 승전지가 있다. 자연적으로는 야생차 북한계 군락지, 곰솔, 굴참나무와, 노루, 삵, 멧비둘기 등 자연생태계도 잘 보존되어 있다. 금강 주변에는 서해안 7대 낙조대 중에 하나인 곰개나루(웅포), 덕양정과 용왕사터, 철새 서식지가 있다.

 

또한 웅포는 일제강점기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익산의 목천포, 춘포, 삼포, 다가포, 성당포와 함께 6대포구중 하나였다. 해산물을 실을 황포돛단배가 서해바다의 금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와서 그 물건들을 뭍에 조달하는 제법 큰 포구였다. 또한 내륙지역의 들녘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배에 선적하여 섬지역이나 다른 포구로 실어서 나르기도 하였다. 또, 어업과 농업의 접점지역으로써 물물교환 이루어지는 장터로써의 구실을 했다.

 

그 길은 배에서 하역된 짐을 진 장사꾼들이 곰의 이루지 못할 전설을 간직한 곰개나루에서 시작하여 오솔길과 산 능선을 넘어 함라를 경유해 내륙지역으로 왕래했던 유서 깊은 옛길이기도 하다. 봇짐장사들은 해질녘이면 지금처럼 여관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웃사촌처럼 인심 좋은 농촌마을 여기저기에서 숙식을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삼삼오오모여 물품을 구경하고 흥정하며 아랫녘과 윗녘 소식을 듯 기도 하였다. 장사치들은 다시 장터로 나서면서 그 답례로 물품을 슬그머니 내주고 가는 베려도 있지 않았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문득 어렸을 적 추억이 아롱지듯 떠오르기도 한다.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으나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것은 길이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길가에는 약5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조상들이 살아온 세월만큼 삶의 애환과 수많은 이야기 꺼리를 고즈넉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옛길은 단순한 길로써의 의미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거울이요 자화상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어느 고전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하였듯 옛길도 주마간산 격이 아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을까? 익산의 둘레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다지며 옛 추억과 향수, 잊혀져가는 전통과 역사·문화의 숭고한 가치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싶다.

 

/채수훈(익산시 주민생활지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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