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용(원광대 교수)
회화문화재 한 점을 모사재현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적이 있다. 교토의 정토종 본산인 지은원(知恩院)에 소장된 〈관세음보살32응신도〉로, 조선 명종 5년인 1550년의 작품이다.
선왕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왕비가 발원하여 화원 이자실(李自實)에게 제작시켜 영암의 월출산도갑사에 봉안했던 것이다. 높이 235cm, 폭 135cm의 비단에 석채를 사용하여 관세음보살이 임금과 장군, 여인, 호랑이 등 32형상으로 드러낸 모습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 불화(佛畵)의 장중한 흐름을 잇고 있으면서도, 파릇한 색감에 담은 산수화적 기법, 그리고 해학적인 민화풍이 같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이는 조선초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1447)에 필적하는 작품으로 불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 외에도 상당수에 달하는 좋은 작품들이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작품이 해외에 유출되었는가? 유출형태도 다양해서 증여와 무역, 혹은 전쟁을 통한 탈취, 그리고 수집가들에 의한 콜렉션 등이 상정된다. 그 가운데 자국의 문화재를 지키지 못한 나약한 나라, 문화의식이 결여된 생민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문화재는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제격이다. 그것이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어떻게 되돌려 놓을 것인가? 방법은 매입, 기증, 장기대출, 탈취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용이하지 않고, 탈취의 방법은 범법행위이다. 여기서 새롭게 상정된 방법이 모사재현을 통한 원본의 확보인데, 회화문화재라서 가능한 점이기도 하다. 모사에도 본래의 형상과 색감을 재현하는 원형(原型)모사와 현재의 보존상태를 담는 현상(現狀)모사의 두 가지가 있다. 이렇게 모사재현을 마치면 원래의 형태에서 변화된 과정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자료조사를 위해 밟는 수속이 까다롭고 철저하여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현지를 찾았더니, 미술품의 보존을 위해 특별하게 마련된 실내에서 소수의 관계자들에게 행여 입김이라도 작품에 해를 미칠세라 목장갑이며 마스크 등으로 완전군장을 시킨다. 차회(茶會)에서나 봄직한 절도있는 동작으로 작품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에 있다면 과연 이와같은 취급을 받았을까 되뇌어본다.
이곳에 소장하게 된 연기(緣起)며, 색조견표를 만들고, 이 기회에 견본을 확보해 두겠다며 설치된 다초점 카메라가 동원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6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작품이 마치 작년에 제작한 것처럼 잘 보존되어 있다. 크고 작은 전쟁으로 수난이 끊이지 않았던 고국에서 이곳으로 피신해 있는 것이 보존상에서는 다행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 작품의 모사복원은 월출산도갑사의 대웅전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이를 계기로 해외에 유출된 수많은 문화재의 복원, 반환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국내에 소장된 회화문화재도 그 수명이 있을 것이니, 모사재현의 방법을 확대하면 좋을성 싶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일상의 이르는 곳에서 만나는 문화재에 대한 느낌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양은용(원광대 교수)
▲ 양은용 교수는
수필가, 동아시아종교문화학회 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원광대 한국문화학과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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