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금강문화축제 위원장)
고은 선생님, 가을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가슴 저리게 다가옵니다. 이 가을이 선생님께도 잔인하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이 페루의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인 군산 사람들은 선생님의 생가터와 시비가 있는 미제방죽(米堤-은파유원지)을 거닐면서 선생님께서 행여 상심하셨을까 걱정하는 말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에 있는 자택에도 많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죠. 마음을 비운 듯 선생님께선 여느 해처럼 일찌감치 집을 비워두셨구요.
'소설 화엄경'에서 보여 주셨던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도를 터득하신 선생님께서 노벨상 그 자체에 그리 연연하신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문단이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어 후배 문인들이 활발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계기를 선생님께서 만드시고 싶어할 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2002년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등과 함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이후, 선생님께선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상 후보에 올라 온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0년에 간행된 『고은전집』만 해도 원고지 12만장이나 되고, 세노야 2003행사를 할 때 선생님의 저서가 무려 141권이나 되었다고 하니 경이로울 뿐입니다.
약속대로, 그 후 「만인보」를 완간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2003년 제1회 금강문화축제를 계기로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지역문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가칭 '고은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지만 아직껏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힘을 내서 이 사업을 공론화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 입니다. 군산 시민, 나아가 전북도민들의 역량을 모으겠습니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선생님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미룡동 용둔리 생가터와 할미산, 출가해 승려가 되기도 했던 금광동 동국사, 전쟁의 상처를 안고 아파했던 군산항 부두, 노래섬(歌島-대우자동차공장 부지로 편입), 선유도 망주봉…….
절망과 허무를 넘어 희망을 노래했던 고은 선생님,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전사가 되어 치열하게 맞섰던 그 열정을 고이 간직하십시오. 부디 강건하셔서 조국 통일의 그날 다시 백두산에 올라 축시를 들려 주십시오.
/ 김현일(금강문화축제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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