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전주고 교사)
오랫동안 진안에서 생활하다가 전주로 온 지 세 해가 되어가지만 진안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버스를 타고 진안으로 가 골목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막걸리를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곤 했다. 골목집은 3~4평 되는 막걸리집인데, 그 집에만 가면 으레 만나는 친구가 있다.
진안에서 18년간 생활하면서 지역 선생님,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일이 많았다. 여러 단체와 연대하여 추진했던 어린이날 큰잔치, 마이 어깨동무·느티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학생신문 제작, 청소년 문화축제, 지역을 바로 알기위한 진안역사 골든벨, 통일 골든벨, 전통문화 기행, 벽화 그리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가지고 진안의 수백 군데 마을을 답사하면서 지역 구석구석의 향토를 모아 진안의 마을신앙, 진안의 마을유래, 진안의 탑 신앙, 진안의 마을 숲 등 책을 엮어내고 향토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필자가 진안 출신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마음은 늘 진안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겸연쩍게 진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인상 깊었던 활동은 어린이날 행사와 독서교실이다. 지금도 학생신문과 함께 행하여지는 두 행사는 진안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진 교육활동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고 생각한다.
독서교실은 어렵게 사회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으로 시작하였는데 학부모님의 관심과 열기가 대단했다. 독서라는 것이 꼭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자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침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매달 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독서교실이 열린다.
진안 어린이날 큰 잔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역의 아이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행사다. 10여년을 이어오는 동안에 지역 초등 선생님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촌 학생들에게 어린이날을 지역축제로 만든 열정적인 모습은 지금도 살아있다. 진안의 어린이날 큰 잔치는 단순히 어린이날 행사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지역축제가 되었다. 농민회는 어린이날 행사 때 손수 떡을 준비해와 아이들과 함께 떡메치기를 하고, 소방서에서는 아이들에게 소방체험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종교단체는 천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고, 때로는 개인이 돼지 한 마리를 후원하기도 했다. 어린이날 행사를 도왔던 교대생이 졸업 후 지역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진안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진안 어린이 날 행사의 힘은 많은 사회단체의 연대에 있다. 진안문화의집, 진안평생학습지도자협회, 소연문화원, 청소년지원센터, 무진장소방서, 진안농민회, 진안보건소, 진안 청소년수련관, 진안 지역아동센터 등 많은 단체는 어린이날 행사를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선물을 받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준비한 티셔츠는 비록 몇천 원의 값어치에 불과하지만, 혹시라도 늦게 와서 못 받으면 울고불고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느 해인가는 책 선물을 주기도 했고, 자전거를 주기도 했다. 요즘에는 토마토 모종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생명을 가꾸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진안 친구가 집에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 날 이후 아들이 묻는다. "아빠 어린이 날에 진안 갈 거죠?" "그래, 가자." 올해도 우리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한마당 축제가 되리가 생각한다. 언제나 진안 어린이날 행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이상훈 (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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