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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

▲ 김 선 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가을색 완연한 전북도립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모악산 풍경이 일품이어서 미술관 방문은 일석이조의 기쁨을 준다.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과 삼삼오오 짝 지어 나들이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미술을 아직 멀게 느끼는 학생과 시민들이 대중적으로 친숙한 세계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블록버스터 전시의 매력일 것이다. 전시장 입구 티켓부스와 화려하게 채색된 전시벽면이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의 블록버스터 전시장을 보는듯하다.

 

2008년 가을 예술의전당에서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전이 열렸었다. 한 방송사와 블록버스터미술기획이 주관한 이 전시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낚였다"는 표현을 쓰며 주관사를 비난했다. 이 전시에는 부쉐의 걸작인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피터르 브뤼헐2세의 '스케이트 타기' 등 다른 거장들의 유명한 유화들이 포함됐지만 정작 렘브란트 작품은 유화는 한 점뿐이었고 에칭 등 판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시간쯤 걸릴 것으로 예상한 도립미술관 관람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나의 샤갈'을 느끼게 할 샤갈의 유화는 한 점도 없었고, 피카소의 유화는 단 한 점이었다. 단체관람온 학생들이 "샤갈이 그린거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보면 살포시 터치한 유화처럼 착각할 수도 있는 샤갈의 판화들이다.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것은 독창적인 구성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의 유화덕분인데 저 밋밋한 판화들만으로 '나의 샤갈' 운운하는 것은 억지이지 싶었다. 오히려 앤디워홀의 마릴린먼로 판화 10장이 눈길을 끌었지만 전시위치가 관객의 시선보다 높아 불편했다. 마네와 몬드리안 등 우리에게 익숙한 거장들의 판화가 대부분이었다. 전시제목이 차라리 '세계미술거장의 판화전'이었다면 피카소의 유화를 만났을 때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쁘지 않았을까. 내용과 동떨어진 제목, 과도한 홍보와 관객몰이...공공성을 띄어야할 도립미술관이 상업미술기획사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쉬웠다.

 

전북도립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당초 '밀레에서 피카소까지'란 이름으로 기획됐었다. 바르비종파와 인상파, 입체파를 아우르는 전시를 기대하게 하는 이름이다. 전시일정을 두 차례 연기하는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는 처음의 의도와 많이 달라져있었다. 예산과 경험이 부족한 미술관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하려니 미술관 직원들의 고충과 노고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이제 겨우 개관 8년을 맞은 미술관이 굳이 이런 전시를 무리하게 추진해야했을까. 올해 초 취임한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제일성은 "더 이상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블록버스터 대여전을 갖지 않겠다"였다. 블록버스터전시는 미술의 대중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미술관 자체 기획력을 위축시키고 상업적 규모화가 미술 자생력을 침해하기 때문에 공공미술관이 할 일은 아니라는 미술계의 지적을 수용한 말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올해 예산은 26억7천만원, 이 중 기획전시비가 2억7천만원, 작품구입비가 2억원으로 공공미술관으로는 영세한 수준이다. 블록버스터전시에 8억원을 쏟아붓는 일과 작품구입과 기획전시예산을 늘리는 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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