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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레인보우] "나만의 카메라 드는데 누구 말도 듣지 마라"

삶에서 최고 미덕은 자신에게 보내는 신뢰가 아닐까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어느 날 보니 그곳에 무지개가 떴다. 눈에 어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달려갔다. 고개를 넘어도, 넘어도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영화 <레인보우> 는 ‘지완’(박현영 분)이 영화감독의 길을 가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두면서 시작된다. 머지않아 입봉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하나로 과감히 교문을 박차고 나간다. 운동하는데 동네 운동장에 고인 물에 무지개가 떴다.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신호였던가. 그날 이후 무지개가 보이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업만 3년, 열다섯 번이나 고쳤음에도 영화사 피디는 오케이 사인을 주지 않는다. “제작자들이 계산에 얼마나 밝은지 알아? 다른 작품을 한번 써보지 그래”라며 「스타탄생」이란 시나리오를 부여잡고 다시 2년의 세월을 보낸다. 헤드 랜턴 끼고 하얗게 지샌 밤이 얼마였던가. 음식을 태워 방안이 연기로 가득해도, 빈 그릇과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도 괘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보니 노트북 모니터 안에서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아닌가. 벌떡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렸지만, 없어지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괴롭혔다. 환영(幻影)이었다.

 

“언제까지 할 거야?” 순박한 남편 ‘상우’(김재록 분)가 일어나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하나뿐인 아들 ‘시영’(백 소명 분)은 엄마 얼굴을 벽에 붙여놓고 공 던져 맞추기 놀이를 하며 말한다. “우리 엄마는 참 한심한 것 같아.” 학교에 한번 가겠다고 하니 한마디로 일축한다. “오지 마, 쪽팔려!”

 

‘전략적 가족치료’에 ‘가족 항상성’이란 용어가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외의 환경에서 가족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변화하고자 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병리적 가족일수록 변화보다 안정을 위해 가족의 엄격한 연쇄 과정을 유지하며 기존 방식에 완고하게 집착한다.’라는.

 

그 와중에 시영이 학교 보컬그룹에 가입한다. 지완이 묻는다. “너 무대 공포증 있잖아?” 시영은 대꾸도 안 하고 기타만 친다. 카메라는 이집 풍경을 잇달아 클로즈업 한다. 엄마는 시나리오, 아들은 기타, 아빠는 술…. 시영이 엄마에게 부탁한다. 영화 만들 때 자신을 ‘행인 3’으로 출연시켜 달라고. “왜 행인이야? 그것도 3으로?” 시영이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목적 없어도 그냥 길을 갈 뿐이야!”

 

시영이 보컬그룹 발표회 날이다. 원하는 이펙터도 사 줬겠다, 지완 부부가 응원하러 간다. 아들은 무대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아들 기타가 울리지 않는다. 이때 상우가 고함을 지른다. “전기 좀 팍팍 써 이 자식아!” 시영이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가족의 눈이 한 곳에서 마주친다. 시영이 연주를 시작한다. 자신이 작곡한 ‘행인 3’이란 노래를 광적으로 부른다. 관객이 환호한다. 담장 너머로 무지개가 뜬다. 시영이 무지개 속으로 들어간다. 내외는 두 손을 꽉 잡는다.

 

액자영화다. 걸개영화, 영화 속 영화. 영화가 우리 집 사진 틀 속을 비집고 다닌다. 내 꿈은 어떤 내용 일까. 적어도 클리세(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 되는 말)는 아니겠지.

 

영화는 아빠를 조명하지 않는다. 이 집의 만년 ‘행인 3’은 상우라는 듯. 왜? 일본식 표현으로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두산백과)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뜬금없이 행인 3을 지망하는 아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유인즉 초지일관했다는 것. 엄마는 휘둘리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영화는 지완이 <레인보우> 시나리오를 다시 집어 들면서 끝난다. 그녀가 <레인보우> 라는 시나리오에 담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며칠 전 심포지엄에서 만난 신수원 감독은 자전적 영화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직에서 퇴임하고 9년 만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세월의 고초가 배어있는 모습에서 근기(根器)가 풍겼다. “모두가 주인공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삶에서 최고의 미덕은 자신에게 보내는 신뢰 아니겠어요? 나만의 카메라를 드는데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가 옆에서 거들었다. “챔피언은 더는 직구를 던지지 못할 때 직구대신 자신의 심장을 던집니다. 벤치 한구석에서 울지 않아요.”

 

잃는 게 두려워서 커가는 불안과 의심, 불신의 벽에 바이러스처럼 기대고 살아야 하는가.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처럼 단호하다. 어찌해야 할까. 아,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다. 개미는 지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영화치료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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