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이런저런 소모적인 생각들을 뒤로한 채 책상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진화론 혹은 진화심리학을 다룬 책들이었다. 이 책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진화론 안에서 사람들은 생산적이거나 후대를 위한 것도 아닌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을 기반으로 인간의 다양한 행동양식과 문화적 관심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사람들이 어째서 이야기에 열광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영화제라는 축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해의 차원을 지닌다.
이 분야의 전문가 중 하나인 폴 블룸은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라는 저작에서 이야기에 인간이 빠져드는 이유는 “다른 목적으로 진화한 정신작용의 부산물”이며,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마음의 ‘본질주의’에서 우연히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진화론의 대부분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 어떤 행동 패턴을 지니는가를 설명한다. 남성이 어여쁜 여성을 선택하고, 여성이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후손을 위한 진화론적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 방식 이외에도 인간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측면들이 있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쾌락을 얻는 이유가 맛과 향 때문이고, 음악이 좋은 이유는 소리 때문이며,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 폴 블룸은 일부만 맞는 말이라고 답한다. 그 속에는 맛과 향과 소리와 스크린을 넘어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대상의 참된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본질주의의 추구이며, 어떤 영화를 볼지 결정하는 것은 본질주의에 따란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본질주의의 차원을 넘어서 이야기족과 실용족이라는 두 종류의 인류를 제시한다.
“결말은 뻔하다. 이야기족이 땅을 차지한다. 이야기족은 바로 우리다. 이야기와 담쌓은 실용적 인간이 실제로 존재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사실을 몰랐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실용족이 경박한 이야기족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라고 추측하지 않았을까?” 이야기의 다양한 본질과 경험과 현재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를 삶으로 구성한 현재 인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가 바로 이야기족이며, 우리의 문화적, 정신적 진화를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야기 통해서 문화·정신적 진화
한국사회가 문화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실용성과 경제를 최우선에 앞두고 있는 현실에서 이야기를 다루거나 제시하는 페스티벌은 인간의 또 다른 진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과장된 말일까. 그러나,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이야기하는 차원은 고사하고, 그냥 애니멀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작금의 현상들은 답보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놓는다. 축제를 앞두고,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작성되지만 이익과 부정성을 앞세운 과거의 판박이일 따름이고, 그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본능에 맞춰진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