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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Gaja), 세월호 그리고 가진 자의 피해의식

▲ 곽병창 극작가・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세월은 모든 것을 묻는다. 가슴 속에 묻고 기억 속에 묻고 잘 해야 종이 위에 묻는다. 지난 것들은 그저 지난 것들일 뿐 결코 되살아오지 못 한다. 인간은 진정 과거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존재인가? 과거의 기억이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들은 끊임없이 과거로부터 악을 배워온다. 그들에게 과거란 저주와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쌓아놓은 지하 창고와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해서 좋을 과거와 가슴 깊이 묻고 삭혀야 할 과거를 잘 분간한다. 오로지 과거의 악마들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자들만이 평화로운 현실을 무참히 망가뜨린다. 문제는 이들이 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이다. 힘을 지닌 존재들이 과거의 피해의식에 깊이 젖어있을 때 그들의 손짓 하나 목소리 하나, 글 한 줄도 다 흉기가 된다.

 

인간을 야만으로 만드는 피해의식

 

이천 년의 유랑과 가혹한 살육의 기억으로부터 유대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되살려오고자 하는 것일까? 여전히 세상 모든 나라가 그들을 적대시하고 멸망시키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 끔찍한 피해의식이 가공할 폭력 무기들과 뒤엉켜 날뛰는 자리에 죄없는 어린 것들의 찢긴 시신이 나뒹군다. 가자지구의 비극은 인간의 피해의식이 국가라는 이름의 집단 폭력과 결합할 때 얼마나 무서운 악마로 변하는가를 보여준다. 유엔학교도 병원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퍼부어대는 저 끔찍한 첨단 무기들은 과연 저들이 숭상하는 유일신이 보낸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이것은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기억이 보낸 것이다. 그것도 직접 살육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 내려온 집단적 피해의식이, 악마의 이빨이 되어 저지르는 일이다. 이게 남 일인가?

 

패전국임을, 원폭의 피해자임을 한 시도 잊지 않고 곱씹어 온 아베 정권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징벌에 더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그 피해자로서의 집단기억을 부추기고 되살려서 은인자중 키워온 엄청난 국방력으로 어느 때라도 다시 이웃을 쳐들어갈 태세를 가다듬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불안한 이웃이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였고 여전히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이 얼마나 무서운가?

 

무서운 사람들, 그 흘긴 눈, 함부로 휘두르는 주먹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꽃다운 아이들 수백 명이 맥없이 죽었다. 어찌 그 배의 이름은 하필 세월호인가? 그래도 건져주겠지 카톡을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고래고래 랩을 하다가, 울면서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다가, 왜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모처럼 차려입은 육십 대의 동창생들과 제주도로 살러가던 젊은 부부, 그리고 그 비슷한 처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떼로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눈 번히 뜨고 ‘어 이게 먼 일여’ 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수백 명을 대낮에 수장시키고도, 그리고 백일을 훌쩍 넘기고도, 이 나라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무슨 엄마라는 이들, 정치가들,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이 땡볕의 유가족들 앞에서, 그 지옥 끝까지 절망한 이들 앞에서, 추하다고, 노숙자 같다고, 이제 좀 편안히 살자고 눈알을 부라린다. 엄마라는 이름을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가? 어리고 약한 존재, 슬픔에 빠진 이들, 가난한 이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신이 인간의 내면에 원초적으로 심어 둔 본성이다. 그럴진대 저 으르렁거리는 흰 이빨들이, 핏발 선 눈들이 어디 인간의 것인가? 저들의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누구의 피해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대물림되고 옮겨온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점잖은 종편 패널들은 정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란다. 도대체 그 배에서 죽은 이들이, 그 유족들이 이 정권과 기득권 층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저주·복수의 대물림 끊어버려야

 

전방의 내무반에서 한 병사를 악랄하게 괴롭히다 끝내 죽인 이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당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죽어가던 병사가 마지막으로 본 저들의 눈빛은 과연 인간의 것이었을까? 피해의식은 인간을 야만의 상태로 되돌린다. 그 피해의식의 야만적인 요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이긴 자들,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스스로의 끔찍한 피해의식을 딛고 서서 저주와 복수의 대물림을 끊어버린 이들도 참 많다. 바라건대, 세상의 모든 가진 자들이여, 낡고 허황한 피해의식을 부추겨 짐승 같은 가해자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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