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한 공연장·막힌 천막 벗어나
하지만 아직도 이 축제의 계절에는 허전한 구석이 많다. 전주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흥겨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제의 최대 상품은 지역주민이다. 관광객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의 축제를 얼마나 흥겹게 즐기고 있는지 보려고 간다. 거기에 뒤섞여 함께 놀아보려고 불원천리 찾아가는 게 축제관광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독일 맥주 맛 궁금해서 옥토버페스트에 가는 거 아니고, 요사쿠이 마쯔리에 풍경 구경하러 가는 거 아니고, 자라섬 째즈페스티벌에 음반 사러 가는 게 아니다.
전주의 축제는 결정적으로 무엇을 팔까? 한 마디로 전주 사람을 팔아야 한다. 전주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도시임을 자랑하며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낸 음식, 소리를 컨셉으로 한 축제들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음식도 소리도 그 자체만으로는 상품이 될 수 없고 축제로서의 폭발력도 지닐 수 없다. 전주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얼마나 흥겨워하고 더불어 잘 노는지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은 전국에 널려있는 지루한 특산물 축제들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전주사람들이 축제를 통해서 잘 노는 모습은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문제는 축제의 공간이다. 근엄한 공연장이나 식당에서, 임시로 만든 가설 천막들 언저리에서 전주다운 흥을 펼쳐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거리와 광장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옛날 식으로 부르자면 동네의 큰 마당이고 고샅이다. 고샅은 동네사람들이 무시로 오고 가며 이야기를 물어 나르던 선(線)적 소통의 공간이다. 이 작고 좁은 길을 통해서 크고 작은 동네의 소식들이 사방팔방, 이 집 저 집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당이야말로 이 작은 길들이 만나고 서로 뒤엉키는 면(面)적 소통의 공간이었다. 마당에 이르러 비로소 개인들은 집단이 되었고 집안의 밀실에 웅크려 있던 희로애락의 사연들이 광장으로 나와 뒤엉켜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 일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서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전승되면 축제가 된다. 그런즉 고샅과 마당, 거리와 광장은 축제의 본질적 요건이자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다. 축제를 공연장이나 술집, 가설 천막과 특산물 진열대 안에 가두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삶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넓은 마당·길거리서 놀 수 있도록
그런 축제가 관광객들에게 매력 있을 리 없다. 지역민들의 애환, 전통과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생생한 축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시 한 복판의 광장과 그를 둘러싼 거리에서 펼쳐진다. 영국 레딩의 워매드 사이트가 그렇고 호주 애들레이드의 도심 공원인 보태닉 파크, 멕시코 문화예술의 성지와도 같은 소칼로 광장 등이 다 그렇다. 멀리 갈 것 없이 서울시청 앞 광장은 어떤가?
전주의 구도심에는 아직도 광장이 될 만한 공간, 길놀이나 퍼레이드를 펼칠 만한 공간들이 남아 있다. 종합경기장 터도 그렇고 최근 들어선 전통문화의전당처럼 새로 만든 건물들의 앞마당도 있다. 발상을 바꾸면 다 보인다. 문화가 관광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외치는 시대라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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