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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가꾸면 바로 그 곳이 유토피아

▲ 소재호 석정문학관장·문인
필자의 유년 시절,이웃집에 할머니 한 분이 적막한 생애를 살고 계셨다. 언덕배기에 초막을 얹어 날마다 여기를 기어들고 기어나왔으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를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이분이 상당히 견문이 넓고 유식했던지 사람들은 이분을 한껏 공경하는 것이었다. 이웃으로부터 먹거리를 얻거나 식사 초대를 받아도 남들에게 결코 경멸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의 생활 일과 중 하나가 꽃을 가꾸는 일이었다. 집 주변으로 빼곡히 백일홍, 봉선화, 채송화를 심고 가꾸었다. 꽃은 꼭 이 세 가지였다. 농촌 마을 어느집도 이런 호사스런 집은 한 곳도 없을 때여서 할머니 집은 이상한 동경의 나라 그 자체였다.긴 고샅을 돌아 들어 사립문에 들어서기까지 줄지어 색색의 백일홍꽃이 양편으로 도열했다.

 

꽃 만발한 곳이 가장 살기 좋아

 

어린시절 무슨 선경이니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아름다운 정경하면 이 할머니 집 환경을 연상짓게 했다. 필자는 이 때부터 한 평생 백일홍꽃을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마음에 심었다.

 

꽃을 받들고 우러르는 사람의 마음이 철학도 하고, 종교도 만들고, 예술도 창작한다고 필자는 믿기 시작했다. 산 속 절간에 이르면 문짝이며 서까래며 아니 뜰에 파놓은 연못까지 꽃의 모양이 아닌 게 없다. 부처님도 아예 꽃 위에 앉아 있다. 성당엘 가보아도 유리 창문마다 무늬가 온통 꽃 아닌 게 없다. 꽃이 빚어낸 지상의 조화들은 바로 이상적인 하늘 나라를 본받음이 아니겠는가? 저승 길에도 꽃으로 배웅하고 사랑을 주고 받을 때에도 꽃으로 몸짓한다.꽃을 바치는 일은 어떤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 꽃에 담는 소원이 절대자에게 정중히 전달되도록, 또는 감복되도록 하는 신성성의 행위에 다름아니다. 꽃을 통해 신도 인간에게 영접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경이라는 곳에는 틀림없이 아름다운 꽃이 장식됐다. 정원이며, 공원이며, 곳곳이 모두 꽃이고, 청정한 물 위에는 수련이나 연이 앉아 있었다. 선사 이래로 사람들은 허리띠에도 머리에도 꽃을 장식했다.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온통 꽃의 장식품이었다.

 

꽃은 웃음을 빚는다. 꽃을 가꾸는 동네는 결코 범죄도 일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악함이 깃들지 않기 때문이다. 꽃은 사랑을 낳는다. 사죄할 때는 꽃을 바치고 인정을 받으려면 꽃을 올린다. 꽃을 주는 일은 뇌물 증여도 아부하는 일도 아니다. 표창하려면 꽃이 꼭 필요하다. 꽃을 매우 사랑하면 가난하지 않고 드디어 풍요한 정서의 나라에서 행복을 누린다. 모든 동화 속 세상은 그리고 살기 좋은 고장은 모두 꽃들의 함성으로 번성하는 것이다.

 

문화 도시 조성 위해 꽃 심어야

 

우리가 꽃을 심어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하는 필연성과 당위성이 저러한 데서 연유한다. 문화 문명의 도시는 절대로 절대로 꽃이 필 수 요건이다. 문화가 조금 뒤진 도시, 그런 고장도 꽃이 번창하면 일시에 몇 차원 뛰어넘는 문화의 고장이 되고 만다. 도시 설계가 잘못 됐어도 구석구석을 꽃으로 채운다면,가난한 사람이 도시 절반을 차지하더라도 그런 도시를 꽃으로 그 공허를 채운다면 도시는 천하의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물론 꽃에는 여러 가지 나무도 포함한다. 우리 산야에 널려 있는 토종의 수목들 말이다. 유물 유적으로 그 예술성을 돋보이게 하려면 곁에 꽃을 둘러쳐야 한다. 꽃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여인도 미인이 된다.

 

옥상에도 꽃, 벽에도 꽃, 담장 위에도 꽃, 아파트 난간에도 꽃을 치렁치렁 매달자. 모든 자투리 땅, 빈터에는 꽃으로 채우자. 전주는 꽃의 도시, 그게 한옥 마을을 전 도시화 하는 첩경이다. 그게 바로 유토피아요,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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