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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예산 원칙과 현실사이

▲ 수석논설위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전북도의회와 김승환 교육감의 기 싸움이 볼만 했다. 수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도의회의 요구에 김 교육감은 “어린이집에 대한 예산 편성 지급의 책임이 교육감에게 있지 않다”며 도의회의 요구를 거절하다 마침내 3개월치 202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잘 드러낸 ‘사건’이었다.

 

'나쁜 정치' 피하려면 타협·조율 필요

 

교육기관인 유치원처럼 보육시설인 어린이집 유아에게도 체계화된 교육을 시키기 위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누리과정이다. 대상은 3세에서 5세까지 해당되고 방과후 활동비 5만 원, 교육비 6만 원 등 매월 1인당 11만 원을 지원한다.

 

도내 어린이집은 모두 1652곳이다. 이에 소요되는 누리과정 예산은 823억 원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누리과정 유아는 2만3000여명이다. 이중 10%인 2300여명이 저소득층 등 사회배려 대상자 자녀다.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치 않은 것은 법 위반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예산편성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약속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교육청한테 수백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라고 하니 선뜻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김 교육감은 헌법학자 출신이다. 원칙과 법이 기준이고 잣대다. 누리과정 예산도 “정부가 약속을 저버렸고 편성 책임이 없는데 왜 교육감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유아들의 보육 차질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치 않으면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유아들이 보육료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학부모들이 보육료를 부담하거나 직접 가정에서 아이들을 보육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집 종사자들도 신분 불안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이쯤 되면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민생의 문제다.

 

도의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민생의 문제로, 정치의 영역으로 보았고 김 교육감은 법과 원칙의 문제로 대응했다. 정부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는 심산, 이번에 어물쩡하게 넘어가면 내년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육감은 선출직 정치인이다. 원칙과 법대로만 한다면 정치처럼 쉬운 일도 없다. 원칙과 법대로 되지 않는 게 정치다. 그래서 어렵다. 때로는 윽박 지르기도 하고 물밑 거래도 한다. 타협과 조율이 필요한 게 정치이다. 이 기술을 적당히 활용하면 적어도 ‘나쁜 정치’는 피할 수 있게 된다. 민생이나 교육 같은 범위가 넓은 분야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한번 입맛 들이면 되돌리기 어려운 게 복지분야다. 고급차를 차던 사람이 아래 급의 차로 갈아타기 어렵고, 고급 음식에 젖어 있던 사람도 아래 급의 음식으로 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이치와 같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일단 봉합은 됐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3개월 뒤 보육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야가 5064억 원의 예산(전북 몫 200∼250억)을 편성한 것이나, 다른 시·도교육청이 몇개월 분량일 망정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편성한 것도 이런 다급성과 절실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전북교육청만 예산편성을 거부한다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도교육청 예산 수정 편성 잘 한 일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한 농부가 제사에 사용할 소의 삐뚤어진 뿔을 바로 잡기 위해 팽팽하게 뿔을 동여맸더니 뿔이 뿌리째 빠져 소가 죽고 말았다는 고사성어다.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정치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정 액이라도 수정 예산을 편성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내년 국가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도의회와 공동 노력할 명분을 확보하고 보육대란도 막는 이중효과가 있다. 명분과 현실을 고려한 타협책이다. 정치란 이상과 현실, 원칙과 명분 사이에서 항상 고뇌하게 만드는 괴물이다. 누리과정 예산은 홍역을 치렀지만 정치적으로는 좋은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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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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