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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상의원'] 이대로 쭉 가야 하지 않겠는가

두려움 피하는 세 가지 방법, 도망가는 것 분노하는 것 죽은 체하는 것

몇 년 전 절찬리에 상영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명대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 두려움에 관한 ‘미실’의 대사는 백미다. “두려우냐, 두려움을 피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또 하나는 죽은 체하는 것이다.”

 

〈상의원〉이란 영화를 보는데 시종 미실의 대사가 귓전에 맴돌았다. 두려움도 진화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상의원(尙衣院)이란 조선 시대 임금의 의복 등 왕실의 재물을 관리, 공급하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을 말한다. 이곳의 우두머리인 ‘어침장’은 왕과 왕비를 친견할 수 있으며, 잘만하면 양반도 될 수 있었다고 하니 퍽 유별난 기구였던 것 같다.

 

영화는 3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옷을 지어온, 그래서 6개월만 있으면 양반이 될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과 왕(유연석 분), 중전(박신혜 분) 그리고 천재 바느질꾼 ‘공진’(고수 분)을 조명한다.

 

시대적 배경은 우리 역사에서 ‘연닝군’(날 영조) 등극하는 때처럼 보인다. 왕이 당파싸움 와중에 즉위하는 것, 옹립세력인 대감들의 내정간섭이 심한 것 등이 전해지는 내용과 비슷하다. 회상 장면에서 이복형이 세자로 나오고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하하는 과정은 경종과 닮았다.

 

우여곡절 끝에 보위에 오르지만, 왕은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한다. 이는 억압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심한 것이 중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중전은 세자 빈 후보 중 간택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선왕과 이복형은 이 처자를 선심 쓰듯 안겨주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복형은 동생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소고기를 그릇 가득 씹어 뱉어놓고는 마지막 한 점을 건네며 먹으라고 했다. 결국, 중전과 소고기는 같은 성질의 것 일 수밖에. 왕은 “궁중에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내 것이 없구나.”라며 탄식한다. 유일한 왕의 소유물이 있으니 의대(衣帶)가 그것이다. 조돌석이 만들어 준 것이다.

 

어느 날 대신들이 모사를 꾸민다. 중전을 밀어내고 병조판서의 여식을 그 자리에 넣고자 획책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영의정이 있다. 영의정은 청나라가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때 난데없이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으니 공진이란 청년이다. 내전에서 왕의 면복을 태우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급작스럽게 차출된 바느질쟁이 공진이 깔끔하게 수선을 마쳐 중전의 눈에 든다. 공진의 천재성이 그때부터 발현된다.

 

진연(進宴) 날이 잡힌다.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다. 청국이 왕의 등극을 윤허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병판은 이 자리에 딸을 올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병판이 돌석에게 딸의 옷을 부탁하며 말한다. “이대로 쭉 가야 하지 않겠는가.” 돌석은 법도를 어 병판 딸의 옷을 짓기 시작한다.

 

진연에 참석할 수 없는 처량한 중전 앞에 공진이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치수를 직접 재야한다. 왕비의 몸에 손을 대야만 한다. 돌석은 공진에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며 중단을 촉구한다. 진연이 열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전이 입장한다. 청국 사신들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왕이 나가 중전을 맞이한다.

 

병판 여식의 초라한 모습과 왕의 번뜩이는 눈이 각각 클로즈업된다. 얼마 후 돌석의 손에서 공진의 기술을 모방한 용포가 만들어지는데, 옷에서 독침이 나온다. 용포는 공진이 짓고 영의정이 상납한 것으로 조작되어 있었다. 영의정 주변 인물과 공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중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강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왕, 이대로 쭉 가고 싶은 돌석….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 공진에게 영화는 오만 때문이라며 굳이 죄명을 밝힌다. 중전의 원성이 대전에 메아리친다. “내려놓지 못하는 전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소첩이나…. 전하께서는 비겁하십니다.” 언젠가 손자병법을 읽는 중전에게 공진이 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중전은 “사는 게 전쟁이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라고 답했다.

 

영화는 조돌석의 대사 하나에 메시지를 결집한다. “바느질이란 다른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것인즉, 바늘이 들어갈 때는 자신의 혼을 집어넣고 나올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다른 두 세상이란 말이 의미심장하다. 혼은 하나인데 펼쳐지는 세상은 둘이다. 이게 바로 우리 현실 아니던가. 살면서 지금처럼 쭉 가기 위해서는 이 경계를 제대로 넘나들어야 한다. 길을 바꾼다면 몰라도.

 

두려움, 너무 모르면 위험하고 너무 느끼면 가능성이 제한된다. 이를 이중의 위협이라고 하는데, 〈내 감정 사용법〉은 ‘앙드레 콩트’- ‘스퐁빌’과 같은 철학자들 말을 빌려 ‘용기가 아닌 신중함으로 맞서기’를 권한다. 여기서 신중함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과학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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