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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은 버려질 때에 빛난다

미워해야 할 것과 사랑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것이 지성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알람이 나를 깨웠다. 아침 6시 50분. 해가 바뀐 뒤로는 아침마다 새해다. 눈이 많이 왔던 날 일본에서 오기로 한 하정웅 선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무사히 도착했느냐는 물음에 ‘전주는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교통이 마비될 정도의 전주 풍경이 그의 눈에는 아름답게 비쳤던 것이다. 나중 만났을 때에 그는 웃으면서 ‘내가 살던 아키타는 하룻저녁에 3~40㎝가 내립니다. 며칠 쌓여보세요. 사람 키를 넘고 지붕을 덮습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그의 눈에는 전주가 참 아름답게 비쳤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한 청년작가의 개인전 오프닝에서 축사를 하게 되었다. 그 작가는 40대 중반이 되도록 혼자 작업만을 위해서 살아왔다. 그래서 작품도 좋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최고의 작가로 꼽았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그를 지탄했다. ‘…작품에서 아직 수틴이나 베이컨의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푸줏간 고기를 그렸다고 고기 냄새가 나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푸줏간 고기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아직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뭘 말하는지 감각적으로라도 익힐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하면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데 왜 적당히 여기에서 머물려는 것입니까?’ 잔칫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 말을 벼르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의 울타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것을 뛰어 넘는 것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해야 한다.

 

알람이 나를 깨웠다. 아침마다 나는 깨어나야 한다. 70이 다 되어가는 불교 선배는 토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 근처의 술집으로 나를 불러낸다. 화제는 해안스님, 강원도 오현 회주, 등산, 한정식집, 여자, 경허와 돈오돈수, 전립선 이야기 등 다양하지만, 귀결점은 늘 깨달음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한의사를 해 와서 신기한 약도 많이 만들었다. 술 먹고 속이 좋다는 그의 처방약을 먹었지만 술에 약한 나는 집에 와서 모두 토해내기도 했다. 모두 토해내기! 토해내고 좀 진통을 겪지만, 쓸모없는 것을 모두 토해낸 다음엔 개운해진다. 깨달음은 술 마시며 즐겁게 한담을 할 때에나, 속이 쓰려서 괴로울 때에나, 다 토해내고 좀 개운해지는 과정에도 늘 있었다. 아침에 해가 뜰 때에 붉게 물드는 하늘처럼, 그것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헛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 하루를 제대로 소진하다 보면 또 한해가 가겠지…. 매일 깨어나고 매일 죽는 일의 반복, 살아 있기에 죽을 때까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아침마다 제대로 죽기 위하여 산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겁내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용기를 죽는 일에서 배운다. 그래서 적당히 하는 법들을 익혔지만, 적당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적당히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최대한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나에게는 중용이다. 적당히 기계처럼 일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슬 하지만 최대한으로, 모자라지만 속이지 않고 진실로 대응하는 것, 그것이 중용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적당히, 남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마는 것은 무능력이다. 미워해야 할 것과 사랑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것이 지성이다. 오늘 아침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곧 쓰레기통에 버리자. 각성은 버려질 때에 빛난다.

 

△장석원 관장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홍콩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선발 심사위원, 중국예술연구원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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