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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문화의 블루오션

▲ 이종호 신아출판사 상무
전주한옥마을은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가끔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전주 사람이지만 낯선 곳에 온 이방인 같다. 한옥마을은 관광 수요만 볼 때는 성공적인 모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도심 한복판에 한옥이 밀집돼 있고 주변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와 전통문화도시로서 기본적인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적중했다. 한옥마을을 찾는 여행자 중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이 찾는 목적은 볼거리도 있지만 요즈음에는 전주의 맛을 찾는 투어가 대세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맛을 당기는 전주의 맛이 관광객을 몰고 오는 현상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전주의 맛이 바래지고 정감이 없어질 때 한옥마을의 매력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완판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한옥마을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한옥에 대한 낯섦이다.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지붕이다. 버선코처럼 살포시 올려진 지붕은 하늘과 경계를 이루며 이상의 세계를 향한 한옥의 상징이다. 아름다운 곡선의 미학을 살린 지붕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결정체이다. 그러나 한옥마을의 지붕에는 백로 옆에 앉은 까마귀처럼 듬성듬성 보이는 강판 기와가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에 비하여 한옥마을은 고가(古家)의 운치는 기대할 수 없지만 현대식 강판의 지붕은 한옥마을의 정체성과 가치를 생각해서라도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과연 한옥마을이 현재와 같이 지속적으로 관광수요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옥과 한지, 한식으로 대표 되는 전주의 문화콘텐츠는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한 가치가 있지만 방심하다가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한옥마을이 외형적인 전주문화의 상징이라면 전주인의 정신을 표현한 내적인 문화는 무엇인가? 바로 조선 중기 이후 전주에서 목판으로 만들어진 전주의 책 완판본이다. 전라감영 인청에서 만들어진 책판이 전북대학교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고 한옥마을에는 완판본문화관이 들어서 있다.

 

시대를 앞서 문명의 한 획을 그었던 전주 사람들의 지식수준과 전주문화의 우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완판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자.

 

완판본은 서울의 경판본, 대구의 달성판본, 안성의 안성판본에 비해 판본의 종류나 규모에서 단연 최고였다. 전주는 완판본 간행의 필수인 질 좋은 한지와 판재, 각수의 3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전주는 중국과 일본과도 교역을 하는 상업도시로 물산이 풍부한 지식산업의 거점이었다.

 

완판본의 흥행 이유도 경제적 안정으로 여유가 생긴 전주 사람들이 책을 읽는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주인의 지적욕구의 분출이 완판본에서 생겨난 것이다.

 

자치단체마다 수많은 예산을 들여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전주는 완판본이라는 고유한 문화자산이 있는데도 더딘 걸음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전주천변에서 책을 발간해 전국에 유통시킨 전주인의 뛰어난 혜안을 오늘에 되살리는 문화혁명을 지금부터 시작하자.

 

근현대 기록을 담은 책도 광의(廣義)의 완판본이다. 완판본을 중심으로 근현대자료까지 모아 전주에 ‘기록문화전시관’을 설립한다면 전주문화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전주에 기록문화전시관 설립을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전주사고본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조선 시대에 전국3대 출판도시로서 전주의 위용은 완판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찬연한 역사성과 정체성이 있는 문화콘텐츠가 바로 전주문화의 블루오션이다. 전주완판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과업도 험난하겠지만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전주만의 문화콘텐츠가 있음에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누를 범하지 말자.

 

△이종호 상무는 1999년 〈표현〉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며 〈문예연구〉 편집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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