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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色卽是空)

▲ 논설위원

청양의 해 2015년 설 연휴가 끝났다. 사업장에 따라, 또 직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1주일에 가까운 긴 연휴를 보냈다.

 

긴 연휴인지라, 일찌감치 고향 다녀간 뒤 외국 여행을 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고향집을 찾아 어른들 뵙고 성묘도 하며 복된 새해를 염원하는 자리를 가졌을 것이다.

 

위로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

 

고향집에서 부모형제, 친척, 친구들을 만나 왁자지껄 소회를 나누다보면 세상살이 힘든 것도 잠시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된다. 처가도 다녀가야 명절이 끝이니 바빴을 것이다. 주름살 아래 서운함을 애써 묻은 채 오직 자식 사랑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늙은 어른들의 배웅이 가슴에 걸려도, 현실 일자리로 돌아가야 다음 행복도 예약할 수 있다.

 

요양병원을 다녀온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노부모가 거동을 잘 못해 낯선 요양병원에서 설 명절을 보내는 가족의 아픔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은 하얗게 샌 봉분 앞에서 그리운 부모 얼굴만 그리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세상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톱니바퀴처럼 착착 돌아가지만, 언제나 수월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잘 돌아가다가도 몇 번 쯤은 뻑뻑 소리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멈춰버리기도 한다. 아침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한평생 살고 싶지만, 어느 순간엔 저녁 무렵 소쩍새처럼 피울음 울기도 한다.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다. 항상 좋은 시절도, 항상 고된 시절도 없다. 새옹지마다. 극히 일부 비극적 인생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어려움은 언제까지 지속되지만 않는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인생은 그저 남가일몽일 뿐이다. 욕심부리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설 명절 일주일 전인 지난 12일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는 ‘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적용한 항공기항로변경죄, 폭행죄, 강요죄, 업무방해죄 등 대부분 혐의 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의 판단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두고 두고 곱씹으면서 살아가야 할 명언으로 가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이 반성문 7편을 재판부에 제출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극구 변명한 피고인이 쓴 반성문에 진실이 결여됐다고 본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큰딸이다. 한진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닦은 터전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아버지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조현아는 물론 그 집안과 한진그룹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세상 웃음거리가 됐다. 그들의 인간문화가 의심됐다. 재판부가 징역 1년형을 선고하는 순간 조 전 부사장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 순간에 조차 그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1심 판결 전에 2억원을 공탁했다는 조현아측은 이유를 알까.

 

마음 비우고 지혜 얻으면 행복

 

땅콩회항 사건은 재벌의 기업 사유화가 부른 비극이다. 그들의 일부 그릇된 행복관념이 빚은 자업자득이다. 재계에 불었던 인문학 경영 열풍은 한갖 쇼였는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사건이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교도소로 향한 조현아는 아이들과 명절을 쇠지 못했다. 그 가족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리겠는가. 그가 교도소에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얻으면 한없이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 또한 인생의 머나먼 여정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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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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