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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조례'는 지역 생존의 마지노선

정부, 법률적 근거도 없이 자치단체 조례 폐지 권고 /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것

▲ 김영기 객원논설위원,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며 지역 업체나 농민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각종 조례 138건(광역 28건, 기초 110건)을 오는 6월까지 폐지 또는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 이들 조례가 기업들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고 나아가 타 시·도 기업의 진출을 막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전북의 경우 로컬푸드 활성화 조례 4건,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조례 7건, LED 조명 보급 촉진 조례 1건 등이 폐지 대상으로 지목됐다.

 

로컬푸드 활성화 조례는 주민들이 안전한 먹거리를 값싸게 사 먹고 농민들도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판매 센터를 만들어 지원하는 것이고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조례는 지역 건설업체의 공동 도급 비율을 49%까지 높여 대형 건설사의 지역 공사 싹쓸이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며 LED 조명 보급 촉진 조례는 공공기관이 조명기구를 교체할 때 지역 업체 제품을 우선 구매토록 한 것이다.

 

영세한 농민과 건전한 지역 업체를 살리기 위한 이들 조례가 권장되지는 못할지언정 폐지 또는 개선 권고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이름과 정반대로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농민, 자영업, 소상공인, 여성, 장애인, 사회적 기업 등 경제적 약자들의 버팀목이 되어 왔던 조례들을 폐지하라고 압박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공정하지 못한 친기업적 조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규제완화를 명목으로 친기업적 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하더니 후보 시절 누구보다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국민행복시대’를 외치던 박근혜 정부 들어 ‘규제개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더욱 노골화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조례를 중앙정부에서 법률적 근거도 없이 폐지하라는 것은 지방자치법은 물론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근간부터 부정하는 독재적 발상이다.

 

원래 공정위의 존재 이유가 대기업의 불공정 내부 거래와 문어발식 확장, 독점의 폐해를 극복하려는데 있었으나 주객이 전도되었다.

 

특히 최근 ‘규제개혁 대상’으로 포함된 각 지자체 관련 조례는 약육강식의 천민적 자본주의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지역의 최소한의 생산 기반과 유통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산고의 진통 끝에 마련된 지역 생존의 마지노선이다.

 

대기업의 폭압적인 횡포는 막아내지 못하는 공정위의 칼날은 힘없고, 그나마 생존 기반조차도 무너진 각 지자체의 ‘착한 조례’를 개혁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짓밟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점점 더 쇠락해져가는 지역경제와 반대로 대규모 자본을 움켜쥔 대기업과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만 가는 지역사회가 처한 처참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는 일이다.

 

공정이란 ‘가장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몫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수도권 집중, 대기업 집중으로 시장경제에서 밀려난 지역 경제 주체들은 규제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다.

 

공정위는 협력업체 원가후려치기 등 대기업이 그동안 벌여온 횡포에 대해 얼마나 공정했는지, 갑을 관계 때문에 말도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또 얼마나 공정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정부가 지역건설 산업과 지역농업 등 지역경제의 핵심 분야를 구성하는 부문에 대해 그동안의 피해와 소외에 대한 보상은 해주지 못할지언정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를 없애버리라는 것은 결국 지역경제를 무너뜨리고 지역 업체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처사이며 자유로운 경쟁을 명분으로 한 노골적인 대기업 편들기일 뿐이다.

 

전북의 지자체들은 의회와 더불어 전북 도민과 함께 하며 타 시·도의 지자체들과 연대하여 공정위의 폭력적 횡포를 막아내야 한다.

 

이것이 지역을 사수하고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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