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국회 입법권 침해사례 많아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예산을 지방교육청에 전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의 ‘무상교육 비용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시·도교육청에 부담을 넘겼지만, 영·유아보육법에는 ‘무상보육 실시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해야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교육부(시·도교육청)는 소관 업무인 유치원까지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고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맞다.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은 국회가 통과시킨 입법 취지와는 전혀 맞지가 않은 상위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시·도교육청을 지방채 발행 등 빚잔치만 하게 만든 셈이 되었다. 다만, 전북의 경우 타 시·도와는 달리 특수한 상황이지만, 여기선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통과시킨 세월호특별법 제15조에 따르면, 직원 정원을 120명 이내서 일괄 구성하도록 되어 있지만, 시행령에서는 시행령 공포 후 90명, 6개월 이후 30명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이후 30명의 직원의 활동기한은 단 한 달에 그치게 된다. 특별법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시행령이다.
현 정부가 행정입법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사례도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던 시기에 필자가 직접 경험했다. 소위 ‘학교앞 호텔법’으로 당시 논란이 됐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자, 교육부가 장관 훈령으로 관광호텔업에 관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규정을 제정하기도 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회 입법권보다 더 강력한 행정입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 지원관련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사례도 빈번하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법률 사례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FTA피해보전규칙에 법안에 없는 ‘수입기여도’를 적용해 피해보전직불금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켰다.
행정입법이 증가하면서 국회의 실질적인 입법권을 잠식하는 사례가 점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지난 4월말 기준으로 법령 4,433건 가운데 행정입법 3,073건, 즉 69.3%가 정부가 제정하는 행정입법이다. 행정부의 무분별한 행정입법이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 위상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견제의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선진 국가들 사이에서도 행정입법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의회민주주의 원칙 충실히 따라야
이번 국회가 여야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제98조2항 개정은 박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정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입법기관인 국회가 실질적인 입법권을 확보하는 비정상화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삼권분립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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