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랴 허고~”
판소리 단가인 호남가의 첫 구절이다.
호남가는 조선후기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호남에 대한 노래가 없음을 아쉬워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고, 판소리의 중흥조인 신재효가 이전까지 민요로 구전되어 오던 것을 정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어 정확한 작가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내용이 호남지역 50여 고을의 지명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뛰어난 기지의 작가가 대단한 애향 의식의 발로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모두 잘 사는 세상 꿈꾸는 노래
호남가의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우리 지역은 어떤 식으로 풀어갔을까 하고 자연스레 궁금해 지는데, 고창(高敞)성에 높이 앉아 나주풍경을 바라보고, 남녘에 든 봄에는 무장(茂長)하게 핀 온갖 꽃내음에 흠뻑 빠지기도 하던,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선비가 흥덕(興德)을 일삼는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초연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민초들의 풍미가 느껴지는 듯 하여 무척 서정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호남가의 첫 구절이 하필 함평일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모든 만물이 가득차고 원만하며[咸], 바르고 평등한[平] 세상이야말로 모든 제왕이 이루고자 하는 태평성세를 가르키기 때문이라는 설이 그 중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세상 모두가 골고루 화평하며 하나로 뭉치는 이상세계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함평을 제일 첫머리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학설이야 아무러면 어떠한가.
더함도 모자람도 없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듯 하다.
호남가가 처음으로 불리어 지던 때에야 농사만 잘 되면 등따습고 배부르게 풍년가를 부를 여유를 가질 수 있었겠으나, 지금이야 어디 농사만 잘 된다고 마냥 좋아할 수 있나.
경제가 어떻고 일자리가 어떻고 수출 전망이나 국제유가는 또 어떻게 될 것인지 이리 재고 저리 살펴봐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탓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골치아픈 세상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세상일망정 스치는 봄비에도 우거지게 자라난[茂長] 꽃내음에 잠시 빠져보는 여유를 가져보자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건네본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높고 넓은[高敞] 누대에 올라 먼 산도 바라보고 마실나온 늙은 몸과 더불어 흥[興德]을 즐겨보는 것 또한 인간사의 재미가 아니런가.
때 마침 세상은 온갖 꽃이 앞다퉈 자태를 희롱하는 봄이니 바쁘다 바쁘다만 외치지 말고 잠깐이라도 걱정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다.
그동안 선거를 치루면서 흩어졌던 민심도 하나로 모으고 다들 편안한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잠깐 동안의 충전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꽃길 걸으며 힘 모으는 고민을
이번 선거에서 뜻을 세우셨던 분들도 지역의 편가르기 보다는 발전을 위하는 거룩한 마음가짐이 우선일터이니 그간 다소 나누어지고 갈라졌던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는 성스러운 작업의 시작점에서 붉기도 누리기도 한 꽃내음에 흠뻑 취해 청보리밭도 거닐고 산벚꽃도 보고 흐드러진 철쭉사이도 노닐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꽃길에서 돌아온 후에는 오직 지역의 발전과 더 나은 삶을 위해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보길 해맑게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