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폐생(法久弊生)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폐단이 생긴다는 뜻이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40년이 넘은 제도로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전기요금 폭탄, 게다가 정부의 땜질식 처방까지 가세해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 국민적 3중고’라는 폐단을 낳고 있다. 올여름 국민들의 ‘열 받아 죽을 지경’이라는 거친 항변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전력 수요 안정 위해 서민만 희생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도입됐다. 개발을 위해서라면 국민이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는 개발만능주의식 발상으로 시작되어 대기업과 상업용은 빼고 가정용만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다. 국민만 징벌적 전기요금을 적용받고, 국민만 전력수요 안정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다.
현재 4인 가정의 한 달 전기사용량은 보통 300kWh 전후다. 누진제의 3~4단계가 적용되는 수준이다. 여기서 에어컨이라도 틀게 되면 요금이 껑충 뛰는 5~6단계로 진입하고 만다. 연일 폭염에도 틀지 못하는 에어컨이 ‘현대판 굴비’가 된 이유다.
누진제의 목표는 사용량 억제와 소득 재분배가 아닌가. 스스로를 ‘개·돼지’라 칭하는 국민들의 자조 섞인 분노, 10조가 넘는 순이익으로 배당잔치를 벌인 한국전력에 대한 의심어린 눈총이 괜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오늘날 누진제는 역진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형편 넉넉한 사람이 오히려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다. 고소득층일수록 1~2인 가구가 많고, 비싼 제품일수록 에너지효율이 높은 반면, 전기를 많이 먹는 겨울철 전기장판이나 온열기로 난방을 대신하는 사람들은 주로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현행 누진제가 취지를 상실한지 오래라는 것은 이미 전 국민이 공감하고 있고, 감사원이 2013년 누진제 개편을 권고한 바도 있다.
전기료는 세금이 아니라 국민이 사용한 만큼 부담하는 요금인데, 거기다 징벌적으로 요금폭탄을 맞게 해놓고 이제와 부자감세가 우려된다는 것은 생뚱맞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체 전기사용량 중 13%에 불과한 가정용 때문에 전력대란이 온다면 그게 정상적인 전력수급관리인가? 국민이 생필품 쓴다고 해서 대란이 온다면 제대로 된 나라인가 말이다.
대통령은 지난 11일 아침 누진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요지부동이었던 산업부는 대통령의 단 한마디 ‘지령’에 당장 그날 저녁 임무를 완수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안도했지만, 바로 다음날 허탈함으로 돌아왔다.
개선책이라며 내놓은 대책은 7~9월 50kWh씩 덤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폭탄이 54만원인 경우 용돈도 안 되는 3만원 남짓을 빼주겠다는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이런 대책마저도 일찍 내놓으면 서민들이 전기를 더 사용할 것을 우려해 뒤늦게 내놓았다고 한다.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구시대 산물인 누진제 개선해야
한전은 올 상반기만도 영업이익이 6조원에 달했다. 이번 조치로 국민에게 돌려주는 4200억은 쌈짓돈 수준이다. 2000만 가구에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물려 입막음을 하려는 것 아니면 무엇인가.
국민의당은 누진체계를 현행 6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하고, 가정의 평균 전기사용량인 200~400kWh 해당의 누진율을 완화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누진제는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됐고,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누진제 개편만이 답이다. 누진제 개편이 공염불로 그치지 않고, 국민들의 한여름 잠 못 드는 밤이 내년에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