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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전통의 가치

▲ 이정엽 국립민속국악원 학예연구관

며칠 전 장시간의 기차 여정을 앞두고 가을의 호사를 누려 볼 심산으로 책을 한 권 샀다.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며 책들을 뒤적거리다 문득 고전 소설에 도전해볼 마음으로 〈오만과 편견〉을 집어 들었다. 워낙 소설책을 즐겨 읽지 않는 개인적 취향과 정말 오랜만에 읽는 고전이라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익숙해진 대상을 선택했다. 그런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도무지 끝까지 책장을 넘기기 힘들어 포기하고 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이른 가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러던 중 문득 이어폰에서 들리는 판소리 한 자락이 ‘고전의 가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끄집어내더니 평생의 숙제처럼 따라다니던 명제들이 줄줄이 뿌려졌다. ‘대중성과 예술성’, ‘대중성과 상업성’, ‘국악과 양악 또는 국악과 한국음악’, ‘보존·전승과 변화·창작’, ‘전통과 현대’ 등 국악을 전공하고 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상충과 상생의 관계인 이것들이 늘 어려운 숙제이다.

 

상상력 창의력 통찰력 키우려면

 

고전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미국 문학의 전통을 창조한 작가라 칭송받는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라고 말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방식과 자극적인 소재로 무장한 콘텐츠에 적응된 현대인들이 고전 작품 속에 축적된 가치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고전을 살피고 이해해야만 하는가? 미국의 시카고대학이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한다. 1929년 시카고대학의 한 총장이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시카고 플랜’을 도입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시카고대학은 약 8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 고전은 오랜 시간을 견디어낸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그러나 고전의 진짜 가치는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고전의 진짜 가치는 그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의식 확장에 있다. 고전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 또한 이백여 년이 넘게 이어져 온 고전(음악)이다. 판소리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은 예술성과 대중성 등을 포함한 보편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우리가 그 보편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재된 가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라 생각된다. 판소리를 낯설어 하는 일반인의 모습과 〈오만과 편견〉을 어려워하며 문장과 문구를 자꾸 반복해서 읽던 내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판소리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우선 자주 들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익숙해지면 귀가 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판소리는 우리의 선조들의 것이고 그들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통공연예술이 강요되거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통공연예술에 내재되어있는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고 이를 통해 그 가치를 확장해야 함이 옳다.

 

고전소설 읽고 판소리 듣기를

 

몇 해 전에 관람했던 공연이 생각난다. ‘명인에게 길을 묻다’라는 공연 제목이었는데,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성을 얻은 고전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작품을 모색하듯이 명인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전통공연예술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고자 붙인 공연명이 아니었나 싶다. 올 가을 고전과 전통의 가치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고 미래를 모색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고전소설과 판소리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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