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11:51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봄 느린 기차

▲ 신귀백 영화평론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오래된 로망이다. 파리로 향하는 TGV 안에서 줄리 델피는 에단 호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낯선 열차 안에서 사랑을 만나는 꿈? 안타깝게도 KTX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좁은 나라에 이렇게 열차가 빠르니 의자 조절하고 스마트 폰으로 문자 몇 통 보내면 목적지에 다다른다. 언제 계란에 소금 바를 시간이 있겠는가?

 

임피에서 춘포까지 아주 느리게 가는

 

1914년에 건립된 춘포역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라선이 속도 때문에 버리고 간, 이 역은 이제 열차가 서지 않는다. 하지만 열차마니아들에게 춘포역은 성지다. 아울러 80살 넘긴 임피역 역시 ‘연인템’ 중 하나이다. 발 빠른 인스타 커플들은 이미 다녀갔다.

 

춘포역 주위에는 일제 강점기시절 호소가와 농장건물이 아직 남아있고, 만경강이 지척이다. 임피 가까운 이영춘가옥을 지나 군산에 이르는 길은 시간여행의 최적지 아닌가. 그래, 임피에서 춘포까지 아주 느리게 가는 기차를 달리게 한다면? 그래서 모였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시범 운행, 다음에는 매주 운행, 그리고 주말에 느린 기차 운행이 정례화 되는 날을 만들어 봅시다.” 까마귀떼 교복군단으로 김제에서 익산으로 통학하던 역장과 함열에서 덕진으로 전북대를 다니던 교사 그리고 건축학과 교수, 소설가와 시민 등이 함께 했다. 근사한 이름이 필요했다. 하여, 나온 이름이 ‘봄 느린 기차’다.

 

봄 느린 기차 멤버들과 카메라를 메고 기차마을들을 찾아갔다. 득량은 뜨고 싶어 애를 쓰는 모습이었지만 역 빼고는 마을의 7080풍경들이 세트로 느껴졌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서는 교련복 입은 차장의 만담을 듣는데 조금 조용히 있고 싶었다. 산타클로스가 온다는 강원도 분천역은 그저 귀엽다는 느낌. 의왕에 자리한 철도박물관을 들르니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인 황등역으로 박물관을 뺏어오고 싶었다.

 

한반도를 주유하는 철도 기관사인 박흥수 작가에게 강의를 부탁한 후, 느린 기차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군산에서 임피를 거쳐 익산역으로 들어오는 들판은 한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철도길이지만 철도는 장치산업이다.…그 꿈은 도전해 볼 만”하다 했다. 곡성 기차마을을 궤도에 올린 코레일관광개발 오선수 지사장은 지자체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훈수를 했다. 맞다.

 

한옥마을을 처음 구상할 때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는가? 선로와 시간이 문제라면 춘포역에서 두어 시간 쯤 쉬어가게 하면 된다. 춘포마을의 오래된 동네와 만경강 직강공사로 길을 잃은 강이 소(沼)가 된 과정을 돌아보고 만경강 문학공원까지 걷다보면 민간인 갑과 을은 썸을 타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군산에서 시작 남원까지 가면 더 좋아

 

시장과 도지사에게 일할 거리를 주고 싶다. 코레일 측과 국과장들 함께 임피역과 춘포역에 가서 보시라.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제2의 버스커버스커가 ‘봄개나루(春浦)’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거나 공유와 김고은이 춘포역에서 한 커트 찍게 하는 것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다.

 

타협한다.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임피에서 춘포는 너무 짧다. 사실 이 열차는 군산에서 시작해 익산지나 전주까지 호남평야를 느리게 지나가야 맞다. 할 수 있다면 이 기차가 서도역 지나 남원까지 가도 좋을 것이다. 한옥마을을 ‘설계’한 문화판의 선수들 그리고 전북문화기획의 고수들, 한 수 가르쳐 주시라.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