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서 주로 발생하던 폭력
2000년대 이후 초·중학교 확산
정부·지방 근본 해결책 못 찾아
강제전학 등 조치 제2피해 우려
서울 고교생 자살, 대구 중학생 자살, 부산 여중생 구타, 서울 숭의초 사건, 전주의 여중생 자살 사건까지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학교폭력에 의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1990년대만 해도 학교폭력은 주로 고등학교 수준에서 발생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로 확산되면서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한 건수는 2013년 1만7749건, 2014년 1만9521건, 2015년 1만9968건, 2016년 2만3678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또한 초·중·고 학생 360만 명을 대상으로 2017년도에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1만7500명, 중학교 7100명, 고등학교 3500명으로 2만8000여 명의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1995년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발표, 1997년 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및 학교폭력 추방대책본부 설치, 2001년 학교폭력 국민협의회 발족,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2015년 제3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이처럼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매년 학교폭력에 관한 실태조사도 벌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학교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북의 경우만 해도 해마다 도내에서 500여 건 이상의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 522건, 2016년 589건, 2017년에는 584건으로 3년 동안 1695건의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이 기간에 피해 학생 수는 2600여 명에 이르고, 가해 학생 수는 2900여 명에 달한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심의되지 않고 암묵적으로 처리되는 학교폭력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학교폭력을 인지하고도 그 처리가 미흡하거나, 제도나 규정에 의한 제한적 조치로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전주지역 여중생 자살
지난해 도내 한 중학교의 여학생이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학교가 뒤늦게나마 학교폭력을 인지했지만, 당시 피해 학생 측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당시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들의 보복이 두려웠고 징벌보다는 그들을 교화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와 학교전담경찰관 등을 만나 사과하는 자리로 마무리지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과의 자리를 통해 진심 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피해 학생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긋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 학생은 몇 주 뒤 퇴원해 다시 학교에 갔지만 그 후 또 학교폭력이 발생했고, 피해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가해 학생들은 유족의 요청으로 뒤늦게서야 열린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았다.
학교현장에서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모든 사안이 학교폭력자치위원회 회부에 따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학교를 포함한 주변 모두가 피해 학생의 학교폭력을 인지하고 있었고, 피해 학생이 자해까지 시도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결과를 막을 수 없었다.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청소년 시절의 경우 이런 상황은 제3자인 성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삶의 무게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그것을 기필코 해결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무주의 중학교, 반복되는 학교폭력
지난 3월 무주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이 가해 학생의 학교폭력은 처음이 아니다.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을 당했고, 세 번째 학교에서 또다시 폭력이 발생한 것. 가해 학생은 일정 기간 출석정지 조치를 받았고, 해당 교육지원청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요구를 반영해 관외 전학을 요청했다. 하지만 관내 전학이 원칙인 상황이어서 교육청에서는 교육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해당 지역의 학교장, 교육장 등의 동의와 함께 학부모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학생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현재 해당 학생은 결석을 반복하며 피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률에는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로써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 보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교체, 그 밖에 피해 학생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제시돼 있다. 그리고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로는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부터 전학, 퇴학처분의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의무교육의 대상인 중학생의 경우는 법률의 절차에 따라 강제전학이 가해학생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징계이다.
강제전학 조치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해 2차 피해를 차단하려는 취지이다. 하지만 가해 학생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나 선도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강제전학 조치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해당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가해 학생에 대한 다양한 상담과 치료, 대안학교로의 전학 조치 등을 시도했으나 당사자나 학부모가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가해 학생이 반복적인 학교폭력을 저지르며 전학을 다니는 동안 학교현장과 교육 당국은 이 학생의 선도와 교육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혹시 자신들도 모르게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은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학교폭력 근본적 예방 대책 필요한 시점
학교폭력은 예방할 수 있으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빠른 조치를 통해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이 더 이상 폭력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선도·교육해 신속히 교실로 복귀토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학교폭력법에 따른 일련의 조치와 절차들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 실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법에 따라 정해진 보고와 조치 절차를 따름으로써 학교폭력에 대한 처리의 형식적 책임을 다했다는 면피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현재의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갈수록 다양화되는 학교폭력의 사례들이 모두 다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여러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분야, 어느 하나 소홀히 할 부분이 없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경우는 한창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평생 커다란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신중하고 적극적인 정책들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학교에서는 학생관리에 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교육청은 그런 학교를 지원하고, 교육부와 정부는 보다 나은 정책을 통해 학교폭력 예방 및 사후대책에 대한 커다란 틀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욱 세밀하고 다양한 사례관리와 제도보안을 통해 어느 하나의 학교폭력 사안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를 보는 당사자만의 문제도, 가해자만의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이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박연수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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