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음악은 마땅히 국악이어야 하고, 국악이 이 나라 음악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음악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국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음악과는 별개의 장르를 뜻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쓰이면서 가치에 편견이 매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악은 고급스럽고 우월한 것이며 국악은 진부하고 무언가가 부족한 변방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현실이며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밥 먹는다’ 라고 하면 당연히 한식(韓食)으로 이해하고 ‘말한다’라고 하면 당연히 국어인 우리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듯이, 당연히 ‘음악’이라는 말은 우리음악을 뜻해야 옳다. 서양을 통해 수입된 음악은 서양음악, 양악(洋樂)으로 불려야하고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음악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중심의 사고 체계와 의식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수궁가> 완창을 한적이 있다. 그때 성악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온 학생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노래를 잘 한다고 인정받던 학생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틈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어느 한 학기를 마치고, 동료학생들끼리 종강 파티에서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순서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마치고 많은 박수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환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함을 달래면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앙코르가 뒤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노래에 앙콜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이냐 하면서 미소로 신청곡을 받았는데, 그들의 요청인즉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보라고 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운 금강산”은 코리아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들의 귀에 그 노래는 서양의 노래이었던 것이다. 수궁가>
아! 코리아의 노래, 무엇이 한국의 노래란 말인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국의 색깔과 냄새를 느끼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십 수 년을 먹고 자랐지만 막상 부르려고 찾아보니 아는 노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한국말을 먼저 배우고, 우리의 음식을 먼저 먹으면서 자랐지만 음악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서양음악을 음악으로 알고 먼저 듣고 배우고, 또 불렀던 것이다. 그 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다 궁여지책으로 찾아 부른 노래가 삼천만의 노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본조 아리랑> ....... 그리 큰 공력을 들여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서야 그들은 제대로 된 노래를 감상했다는 듯 만족해하면서 원더풀! 을 외치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괴로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또 다시 시키면 부를 노래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참담했었다고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본조>
서양음악은 수십 개 씩 소화하면서 민요 하나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 음악을 하는 것이 유별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척박한 풍토가 이어지는 한 우리의 정체성은 확립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음악의 주체는 국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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