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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살이의 첫 새해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새해는 최고의 길몽(吉夢)이자 재복(財福)을 상징하는 돼지가 주인공인 기해년(己亥年)입니다. 서울에서 박물관 생활을 1988년 8월부터 만 30년간 하고, 2018년 7월 1일자로 국립전주박물관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고, 주민등록까지 옮겨서 가족과 함께 전주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겐 새해가 전주살이의 첫 해입니다.

직접 살기 전에 저에게 ‘전주는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주양반, 한지, 소리, 서예, 국제영화제, 모악산과 금산사, 비빔밥, 삼천동 막걸리, 콩나물국밥, 모주, 가맥, 남부시장, 수제 초코파이 이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전주살이를 하면서 이들 전주를 일단 즐기느라고 눈, 코, 입, 귀가 정말로 호강을 했습니다.

전주살이에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잘 한 일은 지난해 음력 7월 초하루 경기전 초삭례에 헌관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관람객이 아닌 헌관으로 참여했으니 안동 촌놈이 전주에 와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은 내가 근무할 당시에 이들 기관들은 경복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는 30년 동안 경복궁으로 “매일 아침에 입궐하고, 저녁에 퇴궐한다”고 평소 자랑했는데, 그 공덕으로 경기전 헌관의 영광이 온 것 같았습니다. 이 날 저는 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들고, 흑초의를 입고, 패옥 후수, 폐슬, 대대, 버선, 제화 등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헌관이 되었습니다.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 태조어진 앞에서 분향을 하고, 4배를 올렸다. 저절로 그 마음과 정성, 그 경건함으로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박물관의 앞날을 기원했습니다.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문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문화는 체험이고 소통입니다. 문화 소비자들은 역사와 문화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여 체험하고 체득하기를 원합니다. 참여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진정 사랑하게 됩니다. 겉으로만 보아왔던 경기전에 헌관으로 직접 참석하면서 전주를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이미 온전하게 전주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전주에 새로 부임하는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저처럼 경기전 초삭 분향례에 직접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음력 매월 초하루에 행하니 일 년이면 12명의 기관장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석한 분들은 아마 전주의 최고 최상의 문화와 만나게 될 것이고, 평생 전주를 마음에 담고 응원할 것입니다.

전주는 신석기시대 농사혁명 이후 몇 천년동안 최첨단 물질인 ‘쌀’을 생산하는 오늘날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기술 단지였습니다. 오랫동안 풍부한 물산이 생산되고 모이는 곳이었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유산이 배태되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인류문화는 이제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화, 정보화, 4차산업 등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전주의 미래는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들 변화에 대응할 만한 구심점은 바로 ‘전주의 전통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꿰고, 갈래짓고,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합니다. 세계사의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그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핵심에는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주살이의 첫 새해를 시작하는 저로서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새롭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전주’로 구현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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