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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옛 스승 장소례 선생님

황현택 전북평생독서교육원장·동화작가
황현택 전북평생독서교육원장·동화작가

1951년 4월 1일 초등학교 입학식 날입니다.

유난히 작은 키에 검정색 옷 앞가슴에 이름표와 콧수건을 달고 어머니를 따라 입학식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교장선생님께서 담임을 발표했습니다. 1학년 담임은 제일 얼굴 예쁜 장소례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머니보다 예쁜 선생님이 내 앞에 서니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 뒤 내 이름 불러주고, 내 손을 잡고 ‘하나, 둘’ 나는 ‘셋 넷’할 때 내 목소리가 제일 크다고 칭찬할 때는 어머니가 먹을 것을 사다 줄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이게 장소례 선생님과 가난한 1학년 입학소년과의 첫 만남입니다

그런 나는 한 달이 지난 5월에는 어린왕자가 됐습니다.

가난하고 늘 배고픈 소년의 가슴 속에 어머니 대신 또 한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왕자는 1학년 첫 번째 봄소풍 가는 날 보릿고개에 또 한 어머니 담임께서 만들어주신 큰 상 3개를 받았습니다. 보물찾기 상, 누가누가 잘하나 상, 선생님이 주신 도시락 상을 들고 들어온 나를 보며 가난한 우리집 어머니와 두 형은 행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장소례 선생님의 남자와 여자, 힘 센 아이와 약한 아이 구분 없는 참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입학하고 첫 소풍 가던 날 어머니는 새우젓 장수로 집에서 10여 km가 넘는 ‘째보선창’까지 왕복으로 다녀야 했기 때문에 내 첫 봄소풍 준비는 큰형 몫이었습니다.

형이 싸준 도시락은 반찬이 필요 없는 보리 누룽지뿐이었습니다.

이 도시락조차 첫 봄소풍은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명랑하고 활달한 나를 어린왕자로 만들어 주는 담임선생님 때문입니다.

즐거운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공주산 나루터에서 식사시간 안내를 하는 선생님 주의사항을 듣고 아이들은 제각기 부모 아니면 할머니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헤어졌고 전쟁고아가 된 길연과 현아 두 사람만 덜렁 남았습니다. 남아있는 가난뱅이 두 소년을 불러 앉힌 선생님께서는 돗자리를 깔고 나무 도시락 두 개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더욱 놀랍고 고마운 일은 선생님의 질문이었습니다.

“현아는 도시락을 누가 싸줬지?”

“형아가 싸줬어요.”

“엄마는 어디 가시고?”

“어머니는 새벽에 ‘새우젓 장사하러 째보선창 나가셨습니다.”

누룽지 도시락을 맛있게 잡수시는 장소례 선생님!

지금 생각해 보면 편애 없는 참다운 교육애(敎育愛)라 생각됩니다.

나는 사랑과 교육으로 학년말 종업식에서 우등상이라는 큰 상장을 받았습니다.

1학년 장소례 담임선생님의 올곧은 교육과 사랑이 만든 우등상이 예쁘고 이름다운 꽃씨가 되어 우리 집은 차츰 부자가 되어갔습니다.

내가 학교장이 되고 2004년 시집 ‘청산에 뜨는 그리움’ 출판기념식 때의 만남이 55년 만의 해후였습니다.

가난한 코흘리개를 57세 4년차 중임 교장으로 성장시킨 장소례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춥고 추운 겨울 금강 변 십자들에 매몰아치던 눈보라 헤치고 교실에 들어선 코흘리개 소년을 당신의 목도리로 안아 주시던 또 다른 어머니 장소례 선생님.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황현택 전북평생독서교육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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