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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나라의 도전과 용기

김은정 선임기자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니아의 빌뉴스를 잇는 620km 도로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행렬은 이어지면서 600km가 넘는 도로를 채웠다. 2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자유!’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련 통치를 받고 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니아 등 이른바 발트 3국 국민들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나선 투쟁 현장이었다.

무장투쟁이 아닌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나섰던 이 도로 위 투쟁을 사람들은 ‘노래혁명’으로, 행렬이 이어졌던 이 길을 ‘발트의 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쨌든 발트 3국은 ‘노래혁명’을 벌인지 2년 만인 1991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까지 모두 독립했다.

사실 발트 3국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이민족과 강대국의 지배로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 나라 모두 중세도시의 유산과 독특한 문화로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구시가지 전체를 지정할 정도로 중세도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북유럽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도시의 문화유산으로 친숙해진 에스토니아가 이즈음 뜻밖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외국인들이 에스토니아에 와서 1년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비자’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는 덕분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국가마다 경계를 강화하는 이즈음 오히려 해외인재 유치에 나선 에스토니아의 선택은 놀랍다. 그러나 그동안 인구 132만 명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가 일궈온 기반을 들여다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에스토니아는 일찌감치 IT산업에 국가 경쟁력을 집중해왔다. 그 결과,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으며, 이미 2002년에 전자신분증을 도입하고 2007년에는 세계최초로 전자투표로 총선을 치렀다. 오래된 도시 탈린이 ‘발트해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정도로 IT산업의 중심지로 각광 받고 있는 묘한 조화(?)도 흥미롭다.

이번에도 에스토니아는 코로나를 앞세워 국경을 폐쇄하는 대신 오히려 빗장을 풀고 나섰다. 늘 시대의 변화를 주목하며 한걸음 앞서가는 이 작은 나라의 도전과 용기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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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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