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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AC, WC? 21세기의 페스트를 성찰하며

정도상 겨레말큰사전 상임부이사장
정도상 겨레말큰사전 상임부이사장

다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코라나19에도 묘하게 이념의 투쟁이 투영되어 있다. 1차 대유행에 이어 지난 8.15의 광화문 집회 이후에 2차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코로나19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정책과 대책들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다. 나의 가까운 친척 중에도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이 있는데, 그는 보건소에 가서 검진을 받으라는 연락에도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이유로 버티고 있다. 슬프다. 많은 사람들이 BC(Before COVID-19)로 돌아갈 순간만을 기다리며 AC(After COVID-19)를 견디고 있었는데,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늦춰진 것이다.

“고급식당에 몰려가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즐거움, 매일같이 영화관 앞에 줄을 서고 온갖 공연장에서 댄스홀에 이르기까지 만원을 이루며 공공장소라면 그 어디라도 성난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무질서한 인파, 몸이 닿으면 뒤로 물러나면서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팔꿈치를 팔꿈치에게로, 이성을 이성에게로 다가가게 하는 인간의 온기에 대한 열망”(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 중에서)이야말로 BC의 풍경이었다. 페스트를 겪는 중에서도 오랑시의 시민들은 페스트 이전의 삶을 극도로 추구하였다. 오랑의 시민들과 지금의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그 시절을 BC라고 부른다. 코로나 19가 나타나자 세계는 AC로 진입하였다. AC의 시대에 사람들은 어서 빨리 백신이 개발되어 BC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이제 마스크는 사람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도서관과 전시장, 극장과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예정되었던 강좌와 학술포럼도 취소되고 있으며 교실은 텅 비었고 직장인들의 일부는 재택근무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서 가족 내의 불화와 폭력과 갈등이 증폭되었다. 시장은 텅 비었고, 식당과 술집도 한산해졌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과 자영업자들은 생존이 위협당하는 지경까지 몰리게 되었다. 일상도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이것이 AC의 풍경이다.

사람들은 AC의 날들을 견디면서 BC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BC로 돌아갈 수 있을까? AC가 되자 신자유주의 체제가 얼마나 허약한지 금방 드러났다. 국가 간의 이동은 금지되었고, 교역의 상황을 날마다 나빠지고 있으며 이주노동자의 이동도 중단되었다. 문제는 인간의 오만함이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추상적인 바이러스에도 일상이 온통 어그러지고 생존에 위협을 받은 허약한 존재이면서도 여전히 옛 추억(BC의 추억)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근대 이후 인간중심주의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혹독한 상처를 입혔는지 그리하여 지구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성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BC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19는 수없이 많은 변종으로 변이하며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마치 독감처럼 말이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19가 아닌 코로나21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혼돈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인류는 성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즉,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BC가 오지 않는다면 WC(With COVID-19)로 가야 하는 것이다. 무한 소비의 삶을 돌아보고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사는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도상 겨레말큰사전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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