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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얼굴 없는 천사

강인석 논설위원

삽화=권휘원 화백
삽화=권휘원 화백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2009년 12월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세워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碑)’에 새겨진 글귀다.

당시 전주시장으로 시민들의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 송하진 도지사는 제막식에서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어려운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천사’를 생각하며 이 비가 이웃사랑의 근본이 돼 사회 곳곳이 훈훈한 인정으로 가득 차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지난해 성금을 도난 당했다가 되찾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난 2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지난 2000년 4월 3일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노송동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두고 간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6억6850만4170원이 전해졌고 기부금은 지역내 홀로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 4000여 세대를 돕는데 쓰여졌다.

“도시의 위대함은 건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헌신과 사랑 등 고귀한 정신의 가치에 있고, 얼굴 없는 천사는 전주를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김승수 시장의 평가처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지역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얼굴 없는 천사가 오간 주민센터 주변에 기부천사 쉼터가 조성됐고, ‘천사의 길’과 ‘천사마을’이란 이름도 붙여졌다.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벽화그리기, 화단조성, 텃밭가꾸기 등 천사마을을 테마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했고, 주민센터 입구에는 천사기념관도 조성됐다. 8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70%에 달하고 주민의 25% 이상이 65세를 넘는 노인들이 사는 구도심인 노송동은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현재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마을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 소식이 아직 없지만 코로나19가 사회 전 분야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올해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온정의 손길도 예년만 못하다.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매년 연말연시 이웃돕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지난 1일 세운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지난 27일 현재 65.1도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이어지는 성금 모금 목표액 63억9000만원 중 41억6000만원이 모금됐다. 목표액의 1%인 6390만원이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전북지역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 눈금은 전국 평균 70.4도 보다 5도 정도 낮은 온도다.

매년 연말 얼굴 없는 천사를 맞아온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올해에도 얼굴 없는 천사의 21년째 선행이 이어질 것인지 기대 반 우려 반,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2020년 세밑, 코로나19로 지친 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따뜻한 기부 소식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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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석 kangis@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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