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로이스 던컨이 1973년에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1997년 제작된 호러(공포) 영화 제목이다. 어느 여름날 밤 행인을 차로 친 남녀 고등학생 4명이 사체를 유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1년 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적힌 편지가 날아오고 관련 인물들이 하나 둘 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영화다. 흥행에 힘입어 다음 해 속편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도 나왔다. 1편 만큼 흥행은 못했지만 긴 제목의 영화는 풍자적인 비유와 많은 패러디를 남겼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사건은 이들 영화 제목처럼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준 어두운 과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10여 년전 철없던 중학교 시절 저질러진 일이었지만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치유되지 않은 채 가해자인 두 자매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15일 배구협회의 국가대표 자격 무기한 박탈과 소속팀의 무기한 출전정지 결정이 내려져 이들은 하루 아침에 선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스포츠계의 폭력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온다. “눈 뜨고 싶지 않다. 저 사람들이 그냥 무섭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일기장에 남기고 폭행과 괴롭힘 등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고 최숙현 선수. 서울소재 모 고교 아이스하키 감독의 선수 폭행과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코치의 심석희 선수 상습 폭행, 이택근·안우진 등 프로야구 선수의 후배 선수 폭행, 대학 운동부 학생들의 후배 집단 폭행 등 스포츠계의 어두운 과거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혹시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온 운동부의 일상적 폭력이 이들의 잠재적 인식에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운동 선수의 학창 시절 폭력 사건과 스포츠계에서 빈발하는 폭력 사건 등은 한국 체육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성적 지상주의, 메달 지상주의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함께 손을 맞잡는 아름다운 경쟁보다 승자 독식의 경쟁 만능주의가 만연한 탓이다. 인성 교육이 외면된 채 진행되는 훈련이 타고난 재능으로 우월감에 빠진 어린 선수에게 약자와 패자를 배려하기보다 승자의 자만심을 가르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왜 뛰어야 하는가?’의 이유로 “군대를 안 간다고!”라고 말하는 영화 ‘국가대표’ 속 대사도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쓴웃음을 짓게 한다. 1926년 미국에서 조직된 ‘스포츠맨십 친목회’가 스포츠인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스포츠맨십)로 제시한 8가지 항목 가운데는 동료 선수와의 신뢰, 잔인한 플레이 하지 않기, 승리에 겸손하기, 패배에 당당하기 등이 포함돼 있다. 폭력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스포츠계가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