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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대로의 생각과 마음을 기록한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정은실 사회활동가
정은실 사회활동가

이번에는 사람과 기록을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사람과 기록’이라고 적은 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진행형이다. 아카이브 작업에 대해 그렇게 떠들어댔건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니 자책하는 마음이 든다. 사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그대로의 생각과 마음을 적는 데 집중해본다.

그동안 기록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롭게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기록에 관한 이야기는 습관의 연장선이다. 오랜 서울 생활을 마치고 내려와 본가에서 지내던 중 우연히 고등학생 때 쓴 다이어리를 펼쳤다. 월간 달력의 한칸 한칸마다 깨알 같은 글씨로 그날 있던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내 삶의 대부분이었던 친구들, 만남들, 생각들이 제각각의 사건들로 뒤엉켜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되새기니 반가웠다가도 이런 짓도 했었나 눈을 질끈 감으며 어둠 속으로 묻어버리기도 했다. 다이어리를 눈앞까지 가지고 와야 보일 정도로 작은 글씨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에 왜인지 모를 간질간질함이 있었다.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글자들이 마치 말을 걸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아서였을까.

다이어리 앞면 포켓에는 알록달록하게 유치찬란한 스티커사진이 한 뭉치 들어있었다. 글씨로 읽는 과거와 사진으로 보는 과거는 다른 느낌이었다. 얼른 덮어버렸다. 이어서 대학 시절 적었던 다이어리는 매일 시간 단위로 계획한 일정표가 늘어서 있었다. 무언가를 계속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행하지 못한 일은 다시 적어서 잊지 않도록 체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계획과 실천에 대한 기록이나 좋았던 강의나 글귀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월간 다이어리를 쓰거나 꾸준히 일기를 쓰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더 예쁘게 더 제대로를 고민하다 어느새 손에서 놓아버렸다. 요즘 일로서 글을 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겪는 과정도 비슷하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그 순간에도 어떤 단어가 좋아 보일까? 문장은 어떻게 맺고, 어떻게 시작하면 있어 보일까? 고민하는 순간이 늘어갔다. 관련 자료를 반복적으로 찾아본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머릿속 혼돈의 바다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자고 하이얀 문서 화면을 바라본다. 아까 봤던 어떤 문장이 좋았는데, 저런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하며 그 문장에 사로잡힌다.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다시 온전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원래부터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누가 봐도 멋지고,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특별한 일, 그날의 멋진 장면, 그날의 슬펐던 문장 등 하루하루 삶이 녹아져 있는 이야기들이다.

모두에게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일상의 대화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의 일정표가 될 수도 있다. SNS에 육아일기로 올라오기도 한다. 부분으로서는 각각의 일상이자 평범함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듯 개인의 파편이 모여 사회의 단편을 보여줄 수 있다. 꼭 모두가 동의하는 긍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런 것도 있었어.’, ‘이런 평범함이 우리의 삶이야.’라고 말하는 기록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 쓰는 글처럼 일상의 사소함을 기록하고 싶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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