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전북 국제관계대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14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완전 철군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2001년 9·11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 20년 만에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2011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제거되는 성과도 있었지만, 미국과 동맹국들 또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현재까지 아프간 미군 전사자는 2300여 명이며, 아프간 민간인을 포함하여 16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이 지출한 전쟁 비용은 약 2조 달러(약 2231조원)에 달한다. 2021년 우리나라 총 예산이 558조 원이니, 우리나라의 4년 예산을 몽땅 털어 아프간 전쟁에 쏟아 부은 셈이다.
외교관인 필자는 2013-14년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의 대한민국 대표로 400여 명의 재건팀과 함께 수도 카불에 인접한 ‘파르완’주의 재건을 총괄하고 있었다. 도로, 학교, 교량 등 건설 이외에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아프간 우호병원을 운영하며 아프간 사람들을 치료했고, 초급대학 수준의 직업훈련원에서는 청년들에게 전기, 전자, 자동차, 건축 등 5개 과목의 전문 지식을 전수하여 아프간을 짊어질 인재들로 키워 내는 성과도 거두었다. “여러분들은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you have gained the heart and mind of Afghanistans)”는 미국 고위인사들의 평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 결정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왜일까? 아프간에서 힘의 소모를 막고 중국 봉쇄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는 전쟁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차도살인(제삼자를 이용하여 적을 제거)의 노림수가 있다.
현재 아프간의 70% 정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미군 철군으로, 탈레반의 칼끝은 이제 중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퀴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말레카 해협 봉쇄에 직면하고 있는 중국은, 탈레반과 신장위구르 반정부단체(ETIM: East Turkistan Independence Movement)간 연계 및 영향력 확대로 인해, 파키스탄 카라치와 신장위구르 카스를 잇는 송유관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고민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간 한반도에서 미국과 대치해온 중국은 말레카 해협에서, 미얀마에서, 그리고 이제는 ‘와칸’ 회랑과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중간 대립이 심화되고 확대됨에 따라, 한국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10세기 송과 거란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던 고려의 역사가 21세기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다. 거란을 기분 좋게 달래고, 송을 이해시키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확보한 서희 대신과 고려 조정의 지혜를 오늘날 미중 관계에서,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반드시 되살려야 하겠다. 중국을 달래고, 미국을 이해시키며 대한민국의 활로를 뚫어내는 외교가 절실한 때이다. /김유철 전북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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