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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와 음악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불을 끄는데만 5일이 넘게 걸린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사회적 공분을 불러왔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다. 물류센터의 불은 창고 안 선반마다 놓여 있던 멀티탭에서 시작됐다. 멀티탭은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하는 선풍기를 위한 것이다. 사방이 막혀 있을 거대한 물류창고 안에 설마 에어컨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을까, 상상이 가지 않지만 놀랍게도 축구장 15개 크기, 수백 명이 일한다는 이 거대한 물류창고 안에 에어컨은 없었다.

창고 안의 시설은 더 놀랍다. 물건을 더 많이 쌓으려고 층과 층 사이에 간이층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1층과 2층 사이에 1.5층이, 2층과 3층 사이에 2.5층이 있는 식이다. 쌓을 수 있는 물류가 많아진 만큼 물류를 옮기기 위한 컨베이어 벨트 같은 장치들까지 늘어나 한정된 공간은 더 비좁아졌다.

쿠팡은 최근 1년 동안에만 배송·물류센터 노동자 9명이 과로사로 사망했다. 과로사 문제와 쿠팡의 노동실태가 불거진 이유다. 이쯤 되니 쿠팡의 해결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 배경이 관심이 쏠린다. 쿠팡은 세계 1위 플랫폼 기업이 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는 기업이다. 올해 1분기 매출이 4조 7천억 원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쿠팡의 투자가 거의 물류를 위한 시설투자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을 쏟아 붓고서도 노동환경이 변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물류창고는 아니지만 거대한 마트 창고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다양한 삶을 그린 영화가 있다. 2018년에 제작된 독일 영화 ‘인 디 아일(In the Aisles)’이다. 사실 이 영화는 통일된 독일에서 살아가는 동독 출신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통일 이후 독일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만큼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붙잡아 놓는 것은 영화의 배경, 마트 안 공간이다. 문을 닫으면 거대한 창고가 되는 이 대형마트 공간은 물류창고와 별반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풍경이 있다. 마트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의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 거대한 공간에 요한 슈트라우스나 브람스 같은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들의 노동은 구역별로 영역이 나뉘어져 있을 뿐 지극히 단순한 반복. 넓지 않은 통로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지게차가 내려놓은 물건을 고객들이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데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은 다르지 않지만 영화 속 창고와 쿠팡의 창고는 완전히 다르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물류창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면 좋겠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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