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07:53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역선택과 상도의(商道義)

삽화 = 정윤성 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조선시대 5일장 형성에는 ‘보부상’의 역할이 컸다. 지게에 짐을 지고 다니는 등짐 장수 ‘부상’과 보자기에 싼 짐을 팔러 다니던 봇짐 장수 ‘보상’을 합한 보부상이 5일장의 주역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상거래 형태도 변했지만 5일장은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우리 고유의 문화다.

‘부상’은 조선 초기 조정의 지원으로 부상단을 만들어 서로 도우며 활동했고, 조선 후기에 나타난 ‘보상’은 보상회란 조직을 만들고 규칙을 정해 고객을 속이거나 지나친 이익을 남기는 것을 단속했다고 한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고객과의 신의를 지키고 부끄럽지 않게 장사하겠다는 상인 정신의 철학이 있었던 셈이다.

조선 조정은 1883년 부상과 보상을 하나로 통합하고 관리기관인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해 이들의 활동을 보호하고 지원했다. 보부상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 전시에는 식량과 무기를 운반·보급하고 직접 전투에도 동원됐다. 권력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특권을 누리고 정치적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 임원을 선출하고 안건 심의를 위한 총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보부상은 직업적 윤리를 엄격하게 지키도록 신분증인 ‘험표(驗標)’ 뒷면에 ‘망언하지 말 것(勿妄言)’, ‘행패부리지 말 것(勿悖行)’,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 것(勿淫亂)’, ‘도둑질하지 말 것(勿盜行)’ 등 4가지 계명을 새기고 이를 어기면 엄한 벌칙을 가했다고 한다. 상도의와 신의, 예의를 기본정신으로 보부상 상호간의 상부상조 전통과 엄격한 윤리규범을 확립했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보면 비웃을 일들이 요즈음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국민의힘의 역선택 조장과 정치권의 상도의에 대한 비난이 오갔다. 논란을 부른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이 국민 선거인단에 신청해 달라고 앞다투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다. 기꺼이 한 표 찍어 드리려고 신청 완료했다. 모두 민주당 국민 선거인단에 신청하셔서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어 달라”고 적었다. 야당에게 쉬운 상대를 역선택해 정권교체를 성공시키자는 얘기였다.

민주당은 “정치를 불신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행위, 비열한 짓”이라고 맹비난하며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국민 선거인단 취지 자체가 지지자나 당원이 아닌 사람들의 의견도 듣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맞섰다. 역선택은 여야 모두에게 자유롭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경선 룰 논의를 겨냥해 민주당 선거인단 가입시스템의 문제점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공개적인 역선택 조장 행위는 정치권의 상도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보부상의 상인 정신과 철학을 정치권이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인석 kangis@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