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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의 되재성당과 축사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2009년, 새로운 이름을 얻은 거대한 길이 나타났다. 종교인들과 전문가, 자치단체가 뜻을 모아 그려낸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순례길’이란 이름은 세계의 도보여행자들이 꿈의 코스로 꼽는 ‘산티아고 순례길’ 덕분에 익숙해졌지만 우리 앞에 나타난 이 길은 특정한 지명 대신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더했으니 그 의미가 또 다르다. 전라북도의 전주 완주 익산 김제의 길과 공간을 잇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어느 특정한 종교 성지만 잇는 길이 아니라 종교와 종교가 마음을 열고 함께 만들어낸 길이다. 당초 240km, 아홉 개 노선으로 나뉘었지만 길이 길을 만들어내는 순리대로 노선마다의 길은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하며 성장해간다. ‘순례’는 일반적으로 종교 성지를 여행하는 일이지만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되는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서로 다른 종교성지들, 오래된 그 공간들과 조우하는 즐거움이다.

아홉 개 중 세 번째 노선에 놓인 ‘되재 성당’도 그 중 하나다. 1895년에 지은 ‘되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중 서울의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한옥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기도 한데, 6.25때 완전히 소실되자 1954년 공소건물을 다시 세워 지켜오다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처음 지어진 양식대로 복원해냈다.

‘되재’는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이곳에 ‘되재성당’이 자리 잡은 배경에는 한국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병인박해’가 있다. 1866년부터 1871년까지 6년 동안 희생된 순교자만 8천여 명에 이르는 대대적인 탄압이다. ‘되재성당’은 그 시절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려했던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일구어놓은 신앙의 터다. 그래서일까. 순례길을 걷다가 문득 만나게 되는 ‘되재성당’은 ‘순례’의 의미를 더 깊고 고요한 마음으로 품게 한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는 것’보다 그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좋은 길”이라는 조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되재성당’은 ‘아름다운 순례길’을 좋은 길로 만들어주는 빛나는 보석이다. ‘되재성당’은 오래전 전라북도 기념물(119호)로 지정되어 보존해야할 문화유산이 됐다. 그런데 이 작고 아름다운 성당 앞에 아쉬운 풍경이 있다. 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축사다. 사실 되재성당으로 이르는 순례길 양옆에는 축사들이 적지 않다. 이 또한 이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니 품을 수밖에 없겠으나 성당 바로 앞까지 입성(?)한 축사는 반갑지 않다. 게다가 악취까지 안기고 있으니 문화유산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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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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