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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승려대회

일러스트=정윤성
일러스트=정윤성

1986년 9월 7일 합천 해인사에서 전국 승려대회가 열렸다. ‘9.7 승려대회’로 일컫는 이날 행사는 한국 불교의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한국 불교계가 한 목소리로 불교관계 악법 철폐와 1980년 10.27 법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불교자주화, 사회민주화를 기치로 최초로 반정부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날 승려대회에는 조계종단 지도부와 종단 원로·중진 스님을 비롯해 전국에서 2000여 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운집했다. 1980년 제17대 총무원장에 올랐지만 10.27 법난으로 인해 강제로 물러났던 월주스님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월주스님은 개회사를 통해 “단순히 불교관계법 개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와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자리”라고 천명했다. 젊은 소장 승려들은 불교계 현안뿐만 아니라 부천서 성고문사건 진상 규명, 농산물 수입 개방 반대, 독재 철폐 등을 외쳤다. 행사 중반 금산사 지광 스님이 단상에 올라 단지(丹脂)를 한 뒤 혈서를 써들고 ‘불자여 눈을 떠라’고 외치자 대회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1994년 조계종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연임 저지를 기치로 일어난 승려대회는 한국 불교 개혁의 분수령이 됐다. 젊은 수행승과 불교계 혁신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는 서 원장의 3선 연임 기도를 반대하며 종단 개혁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서 원장측이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폭력사태가 발생한 데다 상무대 비리사건까지 터져 나오는 바람에 정치 문제로 비화했다. 결국 권력과 결탁한 종단 내부를 척결하고 개혁불사를 통해 불교계가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조계종이 21일 조계사에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한다. 정부·여당의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을 시정하겠다는 명분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와 관련 ‘통행세’ ‘봉이 김선달’ 등의 발언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송영길 대표와 이재명 후보가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사과하면서 수습되는 듯 했지만 종단에서 강력 대응에 나서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정 의원의 제명과 출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범불교도 대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교계 일각에선 대통령 선거를 앞둔 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위중한 시기에 대규모 투쟁에 나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대의명분이 약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조계종단과 정부·여당의 갈등이 원만하게 수습되길 바라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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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st@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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