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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과 판화

일러스트=정윤성
일러스트=정윤성

'무문관(無門關)'은 중국의 승려 무문혜개(1183~1260)가 엮은 불서다. 옛사람들이 지키고 남긴 화두 중에서 48개의 주제를 뽑아 엮은 이 책은 <벽암록> <종용록> 과 함께 선종을 대표하는 공안집이다. 공안(公案)은 선불교에서 선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정진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간결하고도 역설적인 문구나 물음이다. 수행자들은 이 공안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을 통해 깨우침을 얻었는데 자료에 따르면 1700개의 공안이 오늘에 전한다.

1,700개 공안은 모두 각각의 서로 다른 표현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궁극적으로 만나는 답은 하나다. 글자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그 뜻을 깨칠 수 없고 마음을 다스리고 참선하며 진리를 탐구하고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답을 깨치게 된단다.

선승 혜개가 옛 선사들의 언행록에서 48개의 공안을 뽑아 <무문관> 을 엮어낸 것은 1228년. 놀라운 것은 800년이란 긴 시간을 건너서도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와 가치가 온전하다는 것이다.

판화가 이철수가 지난해 연말 <무문관 연작 판화집> 을 냈다. 전시회에 맞추어 내놓은 판화집은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이란 제목을 더했다. 작가는 <무문관> 에 담긴 공안이 ‘부처와 조사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깨우치게 할 계기와 방편의 언어들’이라고 말한다. 그가 해석해 판화로 담은 화두는 옛 선승들의 화두로만 갇혀 있지 않다. 혜개가 선택한 48개 공안 모두가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의 절박성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현실을 당장 불러들이는 풍경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 열네 번째 공안에 <남전이 고양이를 죽이다(南泉斬猫)> 가 있다. 수행자들이 동당과 서당으로 나뉘어 고양이를 두고 다투는 것을 보고 남전화상이 고양이 목을 베는 이야기다. 판화는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 문제로 이 이야기를 품어 ‘남북이 다투면 죄 없는 고양이가 죽는다. 고양이를 살릴 한마디는 무엇인가’고 묻는다.

최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하자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선제타격능력 확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반론이 뜨겁다. ‘선제타격’이 불러올 무력충돌의 위험성과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지켜온 한반도 평화 정책의 유효성을 앞세운 반론이다. ‘멸공 챌린지’의 시대착오적 상황까지 더해지니 ‘고양이를 살릴 한마디’가 지닌 의미가 더 깊게 와 닿는다. 당연히 쉽게 내릴 수 있는 답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마주한 이즈음의 현실을 보니 시절과 관계없이 세상의 문제를 읽어내는 옛 불서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작가의 말처럼 <무문관> 을 ‘선객들이 찬탄과 경외와 겸손으로 대하는 선서’인 이유도 알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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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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