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힙합문화는 1990년대 대중문화의 소산이다. 1세대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대중가수들의 춤과 음악이 그 통로였다. 지금은 한국의 힙합문화 중심에 있는 브레이크 댄스(비보잉)도 출발이 같다.
브레이크 댄스는 역사가 짧다. 1970년대 초반, 뉴욕 브롱크스의 거리 춤을 시작으로 보자면 길게 잡아도 50년이다.
2020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브레이크 댄스를 2024년 개최되는 파리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젊은 세대의 올림픽에 관한 관심을 높여보자는 취지란다. 도시의 골목에서 공연장으로, 그리고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에 진입한 것도 그렇지만 젊은 세대의 정서를 대표하는 주류문화로 확실하게 정착한 거리 춤의 진화가 흥미롭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비보잉 열풍이 불었다. 그즈음 한국의 비보이팀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계 5대 비보이 배틀을 석권했다. 비보이 세계 랭킹 사이트인 ‘비보이 랭킹즈’에는 지금도 한국이 미국에 이어 2위, 팀과 개인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브레이크 댄스 강국이 된 것이다.
2005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하면서 최고의 비보이팀이 된 ‘라스트포원’도 그들 중 하나다. ‘라스트포원’은 같은 해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플래닛 비보이'로 그 이름을 더 널리 알렸다.
‘라스트포원’은 2002년 최고의 춤꾼을 꿈꾸는 전주의 비보이들이 결성한 팀이다. 2005년 근거지를 서울로 옮긴 이후 지역적 연고가 깨진 지 오래지만 ‘라스트포원’의 고향이 여전히 전주로 꼽히는 이유다.
‘라스트포원’은 2005년을 기점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전속 기획사가 생기고 기업체가 지정 후원에 나서면서 월급을 받으며 맘껏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빛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전속 기획사가 파산하면서 연습실을 잃고 생계조차 어려워지자 더 이상 팀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를 맞게 됐다. 그들은 주저앉지 않고 치열하게 현실과 싸우며 버텼다.
그 후 10여 년. ‘라스트포원’은 여전히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건재하다. 일찌감치 국악이나 무용 등 다른 예술과의 융합을 시도해온 그들의 노정은 오늘의 무대에서 더욱 빛난다.
그러나 한국 비보이들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젊은 세대 문화가 소외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1월, ‘라스트포원’을 이끌어온 리더 조성국이 브레이킹 국가대표팀 초대 감독이 됐다. 파리올림픽에 앞서 올해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향한 조감독과 국가대표의 분투 소식이 들려온다. 이들이 수많은 비보이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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