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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형 슬로시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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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1986년 3월, 이탈리아 로마에 ‘맥도널드’가 문을 열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시위대까지 몰려와 미국식 패스트푸드를 규탄할 정도였다. 오랜 먹거리 문화를 중시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역 고유의 전통음식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새로운 먹거리 운동으로 패스트푸드에 맞섰다.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어진 운동이 또 있다. 음식만이 아니라 도시의 삶 전체에 그 정신을 담자는 ‘치따 렌타(Citta Lenta)’나 ‘치따 슬로(Citta Slow), 이른바 ’슬로시티(Slowcity)’ 운동이다.

슬로시티운동은 기본적으로 ‘느리게 살자’는 취지지만 그 바탕은 속도와 생산성만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자연과 인간,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지키자는 데 있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 32개국 281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슬로시티로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슬로시티가 되어도 5년마다 이뤄지는 재인증 심사를 통과해야만 그 자격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전남 신안 등 3개 군이 처음 인정받은 이후 점차 늘어나 지금은 전주를 비롯한 16개 도시가 슬로시티 자격을 갖고 있다.

2010년 슬로시티가 된 전주는 2016년과 2021년, 두 차례의 재인증 절차를 통과해 2025년까지 슬로시티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주목을 끄는 변화가 있다. 2010년 전주의 슬로시티 인증은 전주한옥마을 권역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16년 4월 재인증 과정에서 전주는 도시 전역을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65만 명 이상의 대도시가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그래서 전주는 ‘도심형 슬로시티’를 개척한 도시로 꼽힌다.

슬로시티 운동은 무조건 현대 문명을 부정하며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지향하는’ 이른바 새로운 도시 운동이다. 슬로시티는 '한 도시의 전통문화와 산업, 자연환경, 지역 예술을 지키려는 지역민들의 지역 공동체 운동과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해가는 노력으로 지켜진다. 어찌 됐든 관광을 도시 경쟁력으로 꼽는 오늘날, 슬로시티 인증은 도시의 힘이 됐다. 아직도 많은 도시들이 슬로시티를 지키고 도전하는 이유다.

‘전주 슬로시티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예비후보가 있다. ‘세계적 관광객 유치를 위해 슬로시티를 과감히 폐지하고 한옥마을에 지하 3층 규모의 주차장과 대규모 쇼핑몰을 건설’한단다.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무모한 공약의 근원(?)이 궁금하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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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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