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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토끼’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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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정보라 작가의 소설 ‘저주 토끼’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출간 5년 만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저주 토끼는 지난 7일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6편에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교보문고의 4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1위에 올랐다. 일주일 전 193위에서 무려 162계단이나 수직 상승했다.

소설 저주 토끼는 저주 용품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친구의 원한을 갚기 위해 저주 토끼를 만들어 복수하는 이야기다. 양조장을 운영하며 좋은 술을 만드는 데 전념해온 친구가 경쟁업체의 비방으로 몰락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저주가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토끼 모양의 전등(저주 토끼)을 만들어 경쟁업체 사장에게 보내고 저주 토끼는 이 집안의 서류와 손자의 뇌, 아들의 뼈 등 모든 것을 갉아먹으며 복수를 행해 손자와 아들, 그리고 사장까지 3대를 죽음으로 몰아 몰락시킨다.

최근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도지사 경선의 컷오프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설 저주 토끼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컷오프 이후 송하진 지사 지지자들은 특정 정치세력이 협잡한 저열한 정치적 살인 행위라고 분노를 표출하며 응징을 천명하고 있다. 송 지사와 함께 컷오프된 유성엽 전 의원의 지지자들도 분을 삭이고 있다.

사실 송 지사의 컷오프는 김관영·김윤덕·안호영 후보 등 경선 무대에 오른 후보 3명의 합작품이었다. 중앙 정치권을 상대로 송 지사 3선 불가론을 설파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송 지사의 용퇴를 촉구하는 직격탄을 날린 후보도 있다. 경중을 따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컷오프된 송 지사 측의 복수와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후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컷오프 다음날 세 후보는 송 지사를 향한 구애 경쟁에 나섰다. 차례로 기자회견을 열어 “송 지사가 완성하고자 했던 여러 공약을 더 연구하고 채택해 전북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겠다”(김관영), “송 지사의 지지가 경선에서 크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송 지사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다”(김윤덕), “전북 발전을 위해 헌신한 송 지사에게 지혜를 구해 도정을 이끌도록 도움을 받고 싶다”(안호영)고 밝혔다.

송 지사는 컷오프 됐지만 미리 확보해둔 당원과 지지도 등으로 경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후보들에 대한 선택적 지지를 통해 자신의 컷오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후보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송심(宋心)의 향방을 주목하는 이유다.

소설 저주 토끼를 쓴 정보라 작가는 권선징악 혹은 복수가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롭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에 곰곰이 되새겨보게 하는 말이다.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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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석 kangis@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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