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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검사’의 추억, 그리고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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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수확의 계절, 들녘이 어김없이 누렇게 물들었다. 풍성한 가을걷이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디서도 풍년가는 들리지 않는다. 햅쌀 수확기인데 아직도 소비되지 않은 재고가 창고에 가득하다. 고물가 시대, 속절없이 떨어지는 쌀값에 농심이 들끓었다. 결국 정부가 쌀값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공급과잉으로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는 게 핵심이다. 농민단체는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쌀은 식량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갖고 있다. 그런 쌀이 제 위상을 잃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점심시간. 학교급식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 아이들은 책상 위에 집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꺼내놓고 담임교사의 검사를 기다려야 했다. 혼식검사다. 보리나 잡곡이 30% 이상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이 적발 대상이었다. 

행여 교육청 장학사가 일선 학교에 혼식 검열을 오는 날이면 교사들이 수업 전에 사전 검열을 하기도 했다. 학교 측의 지시를 깜빡 잊고 흰 쌀밥을 싸온 아이는 교사의 엄명에 따라 친구 도시락에서 보리밥이나 잡곡 한 두 숟가락을 떠서 쌀밥 위에 덮어야했다. 검열 나온 장학사의 눈을 속이기 위해 교사의 지시로 즉석에서 혼식 도시락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준 흰 쌀밥 위에 남의 집 보리밥이 얹혀져 얼룩덜룩하게 변한 밥을 한술도 뜨지 못하고 쫄쫄 굶는 비위 약한 여학생도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정부는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쳤다. 식생활을 개선해 국민의 영양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실상은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급증했으나 쌀 생산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쌀 부족 현상이 심각했던 탓이다. 

정부가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단속했던 그 시절로부터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그 사이 쌀의 위상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품종개량과 농업기술 발전으로 쌀 생산량은 크게 늘었지만 식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소비량은 날로 줄어들었다. 쌀이 남아돌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큰 반전이다. 산아제한 정책은 출산장려로 바뀌었고, 부족했던 쌀은 공급 과잉으로 가격 폭락을 불렀다.

우리 사회에 닥친 심각한 위기다. 쌀농사가 흔들리면 농업인의 삶은 물론 대한민국 식량주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촌 없는 도시, 농업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업·농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비극은 농촌에서 시작될 게 뻔하다. 이 ‘상실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다시 뿌리기 위해 정부와 관련 기관‧단체가 쌀 소비 확대 방안을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또 한 번의 반전을 통해 쌀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우리 시대에 다시 올 수 있을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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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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