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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SPC 허영인 회장이 카톡을 그만 두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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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며칠 전에 중년 남자 둘이서 막걸리를 한잔했다. 전반적으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가벼운 반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우리 나이로 60을 살짝 넘긴 맞은 편 남자의 눈시울이 붉다. 아침에는 대놓고 울었다고 한다.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작업 중 숨진 20대 노동자에게 애인이 보낸 카톡이 눈물의 원인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이미 사망한 다음에 사망한 줄 모르고 애인이 보낸 애틋한 내용의 카톡이 많은 이들을 슬픔에 젖게 했다. 꽃다운 나이에 허망한 죽임을 당한 망자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이 크지만, 졸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이한 방식으로 빼앗긴 연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내 앞에서 술을 마신 남자처럼 많은 사람이 공감한 듯하다.

카톡에서 특별히 애절함을 느낀 대목은 미수신을 나타내는 ‘1’ 표시였을 것이다. 보편문법이 된 카톡 문법에서 0과 1의 이진법은 문법의 근본 구성요소이다. ‘1’과, ‘1’이 없는 내용상의 또는 가상의 ‘0’이란 두 숫자가 만들어낼 대화의 경우 수 중에 이번 카톡처럼 애절한 대화는 거의 없지 않을까. 

누구나 경험하는 카톡 이진법 체계의 감성 가운데 사망한 노동자의 애인에게 남겨진 ‘1’만큼 처연한 숫자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가며 그들이 던진 ‘1’은 창보다 깊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그의 카톡에 남아있는 ‘1’들이 계속해서 그의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를 것이기에 우리는 그 ‘1’ 때문에 함께 눈물을 떨군다.

대다수 시민이 아는 이런 ‘1’의 의미를 SPC는 모르는 듯하다. SPC에게 사망한 노동자는,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애인이자 친구인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노동력이었고 한 단위의 비용일 따름인 듯하다. 남들이 돌팔매질할 때 섞여서 돌멩이 하나 더하려는 인민재판 심사(心思)에서 너무 단정적으로 말한다고?

SPC의 사고 대처를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게 된다. SPC 허영인 회장은 지난 21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안전경영을 위해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읽은 뒤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나 대국민 사과라는 언론플레이를 할 게 아니라 유족에게 먼저 진심을 담아 사과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탄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허 회장에게, SPC에게 이번 인명사고는 노동력 ‘1’의 감소에, ‘1’에다 무수히 많은 ‘0’을 더 붙여서 대처해야 하는 돌발적이고 (사람 때문이 아니고 돈 때문에) 참혹한 비용 이슈에 불과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SPC 대응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유족에게 장례용품으로 파리바게뜨 빵을 가져다준 행태였다. 물론 그 판단을 허 회장이 내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이런 말을 써도 되는지 망설여지는) ‘기업문화’는 그의 책임이다. 

SPC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면서 ESG경영으로 세상을 밝힌다고 천명한 바 있다. ESG경영의 핵심은 ‘사람’이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사람으로 대하고, 경영자가 사람이 되는 경영. 탐욕을 분식하는 ESG경영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잠긴, 사망한 노동자의 애인, 즉 허 회장 자신의 직원이기도 한 그의 가슴을 허 회장이 아직 창으로 후벼파고 있다고 말하면 억울한가. ‘0’의 개수보다 ‘1’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리 없으니 억울할 것도 같다.

/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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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카톡 #S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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