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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와부뇌명이 판치는 세상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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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중 한국외대 초빙교수

40여년간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데이비드 재럿(Dr David Jarrett)은 『33가지 죽음 수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한 상태에서 오래 겪어야 하는 느린 죽음이 있고, 우리 모두가 선택권만 있다면 한 표 던질 돌연사도 있다. 물론 그런 선택권은 우리에게 없다. 돌연사는 죽는 당사자에게는 너그러울지 몰라도 가족과 목격자들에게는 잔인할 때가 많다.” 

 

특히 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경우는 젊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심정지 상황을 맞닥뜨릴 때였다고 한다. 의학드라마에서와 달리 현실에서 심폐 소생술은 힘들고 혼돈으로 가득하다며 대개는 실패한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며칠간은 뉴스를 보는 것도 너무 떨렸다. 세월호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전북 도내 연고자 7명을 포함, 156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허망하게 떠났다. 유가족들은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고 있다. 전문적인 의사들조차도 힘든 돌발적 상황을 생존자들은 눈앞에서 겪어야 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정부는 무능했고 지자체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수사 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정치인들은 당 차원의 재발방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언론은 본질보다 자극적인 속보 경쟁에 치중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대형 참사의 데쟈뷰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화가 치민다. 아니 더 허망하다.

 

안전을 책임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는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인파가 이정도로 몰릴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차원에서 그 누구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BC 343?~BC 278?)이 한탄하며 외쳤다던 와부뇌명(瓦釜雷鳴)이 세상 곳곳에 판치고 있다.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는 뜻이다. 현자들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 이름 없이 사라지고 아첨꾼만이 세상에 가득 차 세상이 혼탁해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던 당시를 한탄하며 지은 시의 한 대목이다. 매미 날개처럼 가벼운 것을 무겁다고 하고, 3만 근이나 나가는 무게를 가볍다고 여기는 결과는 결국 초나라를 멸망으로 몰았다.

 

산업화 시기 우리는 성장에 치중하여 안전을 소홀히 함으로써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했다.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붕괴,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세월호 침몰까지, 반복되는 대형 참사 속에서 재발방지는 늘 공염불이 되었고 슬픔은 늘 국민들의 몫이었다. 

 

특히 희생자 156명중 104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20대는 이미 10대 시절, 또래들이 4.16 세월호 참사로 트라우마를 함께 겪었던 세대인데 또 다른 아픔을 준 것 같아 어른 세대로서 정말 그들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세월호 진상규명마저도 8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해경 123정장 처벌 외에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함께 무능한 내각의 쇄신만이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민경중 한국외대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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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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