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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의존성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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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사물의 운동 법칙’ 중 하나인 ‘관성의 법칙’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특정 사회제도 또는 관행에 익숙해지면 시대가 변해 그것이 비합리적으로 되더라도, 그 제도·관행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보통 고착효과·매너리즘·타성 등으로 비판하지만, 때로는 전통·관습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경로의존성이라 한다.

경로의존성은 기술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특정 기술이 축적 발전을 지속할 때는 합리성 문제가 없지만, 해당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어 신기술과 비교할 때 기존 기술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구성원 모두가 휴대폰을 갖고 있음에도 집에 유선전화를 두고 있는 가족, 이메일 또는 SNS 등 정확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문서를 보낼 수 있음에도 팩스를 주로 이용하는 회사 등, 그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라 간 비교를 해보면 ‘문화의 수수께끼’를 종종 발견한다. 왜 영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좌측통행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우측통행하는가? 왜 미국·미얀마·라이베리아만 미터법 도량형 체계를 따르지 않는가? 세계 각국의 정격전압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110볼트, 220볼트 등으로 제각각인 까닭은 무엇인가? 일본 정부와 기업은 왜 날인(捺印) 관행을 고수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경로의존성에 있다. 비합리성이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고, 기존 체계를 바꾸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의 발전 과정을 보면, 경로의존성을 과감히 탈피한 사례가 여럿 있다. 언론과 출판사는 문서에 글자를 써 가는 방식을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꿨고, 정부는 정격전압을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변경했으며, 보행 방향을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안에서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성과를 달성했다. 이처럼,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사회적 행위를 혁신이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회구조가 크게 바뀐 상황에서 ‘합리성을 상실한’ 제도·관행은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플랫폼 사회에서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시장·시민사회 규율 방식은 개발 연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면 기존 제도·관행은 재편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이고,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노인인구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지역 불균형 발전의 심화로 ‘지방소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 모델에 집착해 기존 제도·관행을 고수하는 것을 멈추고 혁신의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관영 전라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0년간 로드맵을 그려 전라북도 인구의 10%인 18만 명 규모로 외국 인재를 수용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보기술 산업 분야에서 우수 외국 인재를 받아서 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라는 혁신 방향에 공감한다. 그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우수 외국 인재에게 일자리를 공급함과 동시에 한국 인재에게 적합한 ‘좋은 일자리’를 대량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외국 인재가 수도권으로 이탈하지 않고 전라북도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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