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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받는 ‘후백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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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와 관련해서 요즘 다양한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작년 12월 ‘후백제 특별법’을 계기로 역사적 의미 재조명과 함께 세미나 토론회 등이 활발해졌다. 전주가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전국 패권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 도민들 반응도 뜨겁다. 비록 존속 기간이 37년의 짧은 역사였지만 후백제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국가였다. 견훤왕이 900년 전주에 도읍지 터를 정한 이후 지금도 곳곳에 과거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 기록이 철저하게 승자의 관점에 따라 편향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여서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후백제 역사와 그 발자취가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전북의 총체적 위기 상황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모든 사회 지표가 전국 하위권을 맴도는 가운데 미래 성장 동력마저 뒷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에 밀려 존재감은 다소 퇴색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문화도시 시민으로서 전주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더욱이 후백제 중심축이 전주라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의미는 한층 더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전주가 후백제와 연결되는 것 자체를 애써 부인하고 탐탁치 않게 여기는 기류가 지역에 존재했다. 1100여년 전 패망한 후백제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부정적인 데다 역사적 가치도 평가절하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이 어렵게 뿌린 후백제 재조명 작업이 마침내 싹을 틔운 것이다. 

최근 이같이 활발한 움직임은 지난주 전북일보가 주최한 후백제 학술 토론회에서도 여실히 반영됐다. 4시간 동안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그동안 묻혀 있던 후백제의 재발견에 의미를 부여하고 깊은 공감대를 넓혀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적 발굴 복원과 함께 보존이 시급하다며 후속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선거 공약에도 후백제 복원을 명문화하고 실제 ‘왕의궁원 프로젝트’ 를 가동함으로써 발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에게는 유적 복원 못지않게 관광 자원 활용이라는 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전주는 후백제 왕도이자 조선 왕조의 본향이다. 사실 문화 예술 도시의 명맥을 유지하는 그 뿌리다. 한옥마을에 가면 양반 이미지의 문화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도 시민 의식과 생활 속에 곧추세우고 있는 자존감 때문이다. 특별법 이후 후백제와 관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과 유적 복원에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따라서 자치단체를 비롯해 학계 언론에서 후백제 재조명과 함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백제라고 부르며 당당하게 백제인으로 살았던 그들의 역사를 ‘후백제’ 라 칭한 것도 후대 학자가 편의상 백제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강대한 고구려 영토까지 편입시키려 했던 후백제의 진취적 기상을 통해 무기력한 전북의 현실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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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특별법 제정
김영곤 kyg@jj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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