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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기막힌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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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택 파월용사·수필가

내가 월남전에 파병되었을 때의 일이다. 불같은 정글 속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가는 때였다. 이런 상황 중에서 나는 군사령부로 파견가게 되어 병사들 몇 명과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는 미군 병사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소음이 매우 커서 옆 사람의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뒤, 한국 병사들과 마주 앉은 미국 병사 중 한 명이 혼자 뭐라고 중얼 거리더니 나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나는 영어를 잘 모르는데 자꾸 장난을 걸어와 나도 오기가 생겼다.

'니가 미국 병사면, 나는 한국병사다. 똑 같은 전쟁터에서 내가 너한테 꿀릴 것이 뭐가 있냐. 여기 비행기 안에서까지 너희들에게 한국군의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 보아라! 내 전투복 양 어깨에는 대한민국 사단 마크가 선명히 붙어 있지 않느냐.' 이렇게 속으로 곱씹으며 기(氣)를 세웠다.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오면 나도 손짓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이 광경을 한참 지켜 본 한국군 병사들은 제각기 '저 사람 진짜 영어 잘한다.'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뒤 나는 사령부 통신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그 곳은 통신이 불통나면 미군 측에 빨리 연락하 개통시켜야 했다. 신속히 개통을 시키지 못하면 통신대장은 엄한 문책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영어 잘 하는 병사가 맡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귀국하게 되었다.

이에 당황한 소대장은 즉시 영어 잘 하는 병사가 있는지 찾았던 모양이다. 그 때 나와 같이 비행기를 탔던 병사들이 '황 일병 그 사람 영어 기똥차게 잘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소대장이 나를 급히 찾는다하여 근무처로 갔다.

소대장은 나를 보자 반가운 듯 "황 일병 너 영어 잘하지?"하고 물었다. 나는 뜬금없이 묻는 말에 "예? 영어라뇨? 나 영어 못하는데요." 하자, 소대장은 처음엔 자기를 속이는 줄 알고 "이것 봐라? 너 정말 영어 못한단 말이야?"하면서 부드럽게 몇 번 더 말하더니 "정말 못하는가?" 재차 물었다. "정말 못합니다."라고 했더니, 화가 난 소대장은 느닷없이 내 뺨을 그대로 강타하면서 "임마, 너 비행기 안에서 미군 애들과 말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는데 나를 속여"라고 말했다.

느닷없이 뺨을 맞는 순간, 그 때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내 딴엔 한국군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고 기를 세운 것뿐인데… 그들이 나를 그렇게 오해를 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소대장은 다시 말했다.

"명령이다. 네가 인수를 받아라. 알았지? 불통이 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개통을 시켜라. 알았나?"라고 말했다.

그 뒤, 나는 뺨까지 얻어맞고 할 수 없이 인계를 받아 죽도록 고생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숙달이 되어 임무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름도 모르는 미군병사와 맞서 괜한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황당한 사건으로 돌아올 줄이야, 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기가 막힐 일 이었다.

그 뒤 나는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 미군 병사는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그와 만난 것은 스치는 인연 정도였지만 그도 나와 같이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을 하였는지…

이제 월남전이 끝난 지도 수 십년 세월이 지났다. 참전했던 전우들은 모두 70살이 넘은 노병이 되었지만 그 전쟁의 포성 소리는 아직도 내 귓전에 머물고 있다.

/황만택 파월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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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파병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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