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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포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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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시인

필자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을 퇴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간 기관장에게 부여된 많은 권한과 책무 가운데 가장 유익했던 것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대덕혜윰포럼’과 ‘혜윰나잇’을 들고 싶다. 포럼은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소재하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과 대학 및 대전시 유관기관 수장들의 협의체인 대덕연구개발특구 기관장협의회(이하 연기협)에서 2021년 과학의 날을 맞아 김장성 회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의 주도로 힘차게 출범한 인문학 학습의 장이다. ‘혜윰’은 생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대덕의 미래를 생각하는 포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 플라자에서 매달 세 번째 수요일 오전 7시부터 열리는 포럼에는 보통 30여 명의 회원이 모인다. 강연 후 으레 열띤 토론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끝나자마자 준비한 샌드위치를 챙겨들고 서둘러 근무지에 도착해도 지각하기 일쑤다. 

진행과 강연자 섭외는 중앙일보 기자를 역임하고 대덕넷(대전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전문 온라인 언론매체)을 설립·운영하는 등 수십 년간 언론 분야에 종사하며 폭넓은 인적네트워크를 축적한 행정학도 이석봉 현 대전 경제·과학부시장이 맡았다. 그동안 연구단지 및 지역의 이슈 관련 분야의 저명 벤처기업인, 인문·사회학 전문가 등이 초청되었는데 한 번도 실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강의료 등의 경비는 현재 69개에 이르는 회원기관이 규모에 따라 십시일반으로 납부한 연회비로 충당한다.

포럼은 변화무쌍하고(Volatile) 불확실하며(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모호한(Ambiguous)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어떤 문제도 특정 학문분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진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배아 복제를 둘러싼 윤리적 고민이나 영화 ‘매트릭스’ 등에 등장하는 AI에 대한 공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적 시각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본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여 그간 동반자로 큰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했던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20세기에 이르러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축적된 지식의 양이 많아지면서 그 영역과 경계가 뚜렷해졌다. ‘자연과학의 언어’인 수학은 철학의 논리학에서 출발하여 경영회계학, 수리경제학, 삼단논법에 근거하여 법리를 추론하는 법학 등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 분야에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기준만으로 이과와 문과로의 진출을 결정한 후, 서로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여온 게 현실이다. 뉴턴은 스스로 철학자라 칭했고 대문호 괴테는 과학자로 평가받기를 소망했던 사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VUCA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서 과학기술과 인문학 간의 융합이 불가피한 것이다. 

혜윰나잇(night)은 회원기관 간의 협력과 융합 활성화를 위한 교류 모임이다.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 함께 미술이나 음악 감상 또는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서로 간의 교감의 폭을 넓힌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말처럼 꾸준한 학습과 소통, 신뢰를 바탕으로 단단해진 조직만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의 가치를 이루기 위한 힘든 일들을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역전략기술을 확정하고 도민화합의 난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혜윰포럼’처럼 혁신주체의 순수한 열정들이 만나 서로 배우고 소통하는 학습의 장이 마련되길 소망해본다. 

홀로 설 수 없을 때는 기대고 함께 서면서 균형이 오롯해지는 법이다. 

/신형식 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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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전북칼럼 #혜윰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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