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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생 인턴 안나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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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안나 할머니가 그린 예쁜 꽃 그림을 만난 것은 지난해 늦가을이다. 김제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이끄는 예비 사회적기업 이랑 고랑’(대표 황유진)이 마련한 전시 <어르신들을 위한 나라>에서였다. 김제시 죽산면 면 소재지에 있는 낡고 작은 공간 마을 오픈 갤러리에서 열린 이 전시는 꽤 많은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전시 주인공은 광활면 용평마을의 여섯 명 할머니들. 평균 나이 85세인 이 할머니들 사이에 안나 할머니도 있었다.

전시는 이랑 고랑이 용평마을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진행한 그림그리기 교육의 결실이었다. 이랑 고랑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초, 용평마을 할머니들과 만났다. 미술을 전공한 젊은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이랑 고랑은 코로나 확산으로 위태로워진 환경에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할머니들과 그림으로 소통했다.

유난히 아름다운 꽃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던 박안나 할머니는 김제시 광활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토박이다. 7남매를 낳았지만, 아들 하나를 앞세우고 남은 6남매를 평생 이어온 농사로 키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농사를 그만두었지만, 소일거리를 위해 몇 종 밭일 거리는 남겨 두었다.

나이가 들면서 일을 줄였지만 아직 손 가는 일이 많아 하루가 길지 않다는 안나 할머니의 일상이 달라진 것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다. 어느 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선생들이 가르쳐주는 그림그리기를 따라 하면서 할머니는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일도 있구나싶었다. 누가 하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틈틈이 시간을 내어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문구류나 생활용품에 활용되어 아트상품이 되기도 했는데, 구도나 색의 조화가 남달랐던 안나 할머니의 그림은 그중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안나 할머니가 평생 처음 취직한 것이다. ‘이랑 고랑이 할머니의 생애 첫 직장이다. 직급은 인턴. 할머니의 숨겨져 있던 재능과 감각을 눈여겨본 이랑 고랑의 황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자 지난 7, 안나 할머니를 큰 고민 없이 채용했다. 하는 일은 원화를 그리는 일이다. 일주일 동안 일하는 시간은 24시간. 재택근무와 이랑 고랑 작업실 출근을 번갈아 하면서 근무시간을 채운다.

일흔 다섯 살에 그림을 시작한 풍경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아흔 살에 첫 콘서트를 열고 가수로 데뷔한 앙헬라 알바레스처럼 안나 할머니의 도전이 전하는 울림이 크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생겼어.’ 1938년생 여든다섯 살 인턴, 안나 할머니가 누릴 시간과 기쁨이 길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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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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